밥상 위 수저 한 벌에 담긴 2만 년…고고학자가 쓴 《수저 인문학》

신정희 기자

등록 2026-10-19 17:43

음식고고학자 오승환 박사 신간, 한·중·일 식탁의 갈림길을 '숟가락'에서 찾다




"전 세계를 통틀어 이렇게 두 가지 도구를 '한 벌'로 짝지어 사용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합니다."


하루 세 번 수저를 든다. 밥을 뜨고, 국을 뜨고, 반찬을 집는다. 너무 익숙해서 따로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중국집에 가면 젓가락뿐이다. 일식집도 마찬가지다. 숟가락은 왜 우리 밥상에만 남았을까.


음식고고학자 오승환 박사가 쓴 《수저 인문학》(창해)은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30년 넘게 발굴 현장을 누빈 저자가 숟가락과 젓가락의 2만 년 역사를 추적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이 책을 2026년 10월 3주차 추천도서로 골랐다.


삼국시대 사람들은 손으로 밥을 먹었다


책은 통념을 깨는 데서 시작한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식사 도구는 수저가 아니다. 손이다. 저자는 맨손 식사가 야만의 표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음식의 형태와 조리법이 정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몸으로 확인했다. 삼국시대 토기 시루에 고대 쌀을 쪄서 직접 손으로 먹어본 것이다. 처음엔 오늘날의 밥으로 시도했다. 결과는 이랬다.


"밥을 계속해서 손으로 집어먹다 보니 손가락 사이 사이마다 온통 밥알이 달라붙어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 것입니다!"


시루에 찐 고두밥은 달랐다. 저자는 "살짝 쥐면 적당히 뭉쳐지고 놓으면 스르르 풀리는 절묘한 상태"였다고 적는다. 수저 없이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밥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짓느냐가 무엇으로 먹느냐를 정한다. 책 전체를 꿰는 통찰이다.


국물이 먼저인가, 숟가락이 먼저인가


우리는 국물 음식을 좋아한다. 국밥, 찌개, 탕, 비빔밥. 그래서 숟가락이 필요했다고 흔히 생각한다. 저자는 순서를 뒤집는다.


"오래전부터 우리 밥상에 국물 음식이 풍부해서 숟가락을 써온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진실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조선 후기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그러자 숟가락에 맞춰 국물 음식이 크게 늘었다. 도구가 음식을 따라간 게 아니다. 음식이 도구를 따라갔다. 펄펄 끓는 국물은 그릇째 마시기 어렵다. 숟가락으로 떠서 후후 불면 다르다. 뜨겁고 얼큰한 맛을 즐기는 우리 입맛의 뒤편에 숟가락이 있다.


"한국인은 왜 개처럼 고개를 숙여요?"


중국과 일본은 숟가락을 일찍 내려놓았다. 대신 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셨다. 탕츠와 렌게 같은 보조 도구도 그렇게 생겼다. 저자는 이 차이가 예절의 차이로 이어진다고 본다.


책에는 일본 학생과 나눈 대화가 나온다. 저자가 한국에서는 밥그릇을 들고 먹으면 가정교육을 못 받았다는 말을 듣는다고 하자, 한 학생이 되물었다.


"한국인은 왜 개처럼 고개를 숙여요?"


밥그릇을 상에 둔 채 먹으니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일본인의 눈에는 그 모습이 낯설었다. 한쪽의 예의가 다른 쪽의 무례가 된다. 저자는 그날의 충격이 연구자로서 잊지 못할 교훈이 됐다고 말한다.


형님은 숟가락이다


숟가락과 젓가락 가운데 무엇이 먼저일까. 막대기 두 개면 되는 젓가락이 먼저일 것 같다. 고고학의 답은 반대다.


"지금까지 찾아진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숟가락 모양 도구는 그 시기가 무려 2만~2만 5천 년 전이니 까마득한 마지막 빙하기 때입니다."


숟가락은 인류 보편의 필요에서 나왔다. 젓가락은 특정 지역의 음식문화와 함께 자랐다. 책 2부는 이 두 도구가 따로 태어나 한 벌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간다. 매머드 상아 숟가락, 금관총의 은숟가락, 무령왕릉 수저, 마도 1호선에서 건진 고려의 나무젓가락이 차례로 나온다. 고려의 휘어진 숟가락이 조선 후기 일자로 펴진 사연도 흥미롭다. 저자는 그 배경으로 소빙기의 혹한과 '우리가 진짜 중화'라는 조선 후기의 자의식을 꼽는다.


다시 수저를 본다


저자는 이 책을 "고고학자가 들려주는 유쾌한 '밥상머리 수다'"라고 부른다. 딱딱한 학술서가 아니다. 그러나 가볍지도 않다. 유물과 실험, 한·중·일 현장 경험이 촘촘히 엮였다.


저자는 김제에서 태어나 어릴 적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어머니를 도왔다. 시루로 석사를, 구들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음식고고연구회를 만들었고, 지금은 국립문화유산연구원과 함께 유물 속 유기물을 분석해 옛 메뉴판을 복원하고 있다.


오늘 저녁 수저를 들 때 한 번쯤 들여다보자. 숟가락은 밥과 국을 아우르고, 젓가락은 반찬을 집는다. 하나는 2만 년을 건너왔고, 하나는 동아시아를 건너왔다. 그 둘이 만난 곳이 우리 밥상이다.



신정희

신정희

기자

피플스토리
등록번호경기 아54185
등록일자2024-09-09
오픈일자2024-09-20
발행일자2026-10-19
발행인장기영
편집인장기영
연락처031-911-7733
FAX050)4433-5365
이메일uappletv@daum.net
주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중앙로 1449, 1001-201
uapple

피플스토리 © PEOPLE STORY All rights reserved.

피플스토리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