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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고등학생이 있다. 한 해 학비만 4,500만 원인 국제학교에 다닌다. 영어 논문을 여러 편 썼다. 영어 전자책을 열 권 냈다.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앱을 만들었다. 열네 살에 국제 봉사단체를 세웠다. 미국 언론 인터뷰에도 실렸다. 그리고 MIT에 들어갔다.
이력서만 보면 시대가 낳은 천재다. 그런데 4년 전부터 이 이력서의 한 줄 한 줄에 물음표가 붙었다. 한동훈 의원의 딸 이야기다. 그 물음표가 올가을 국정감사에서 다시 떠올랐다. 뉴스토마토 〈김창현의 창〉에서 이은혜 위원은 이 의혹들을 하나씩 짚었다. 이 글은 그 내용을 따라가며 묻는다. 이런 방식이 통하는 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4년 만에 다시 열린 서랍
시작은 국제형사사법공조다. 2022년 11월, 경찰은 한 의원 딸의 전자책 저작권 의혹을 수사하며 미국에 자료를 요청하려 했다. 공조 요청은 경찰이 직접 할 수 없다. 검찰을 거쳐 법무부로 가고, 법무부가 미국에 보낸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이 중간에서 멈췄다. 법무부에 보내지 않았다. 요청 11일 만인 12월 2일, 자체 판단으로 불송부를 통보했다. 사안이 가볍고 미국이 응할 리 없다는 이유였다. 전자책 값이 0.99달러, 우리 돈 1,300원쯤이라는 점도 거론됐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누구였나. 한동훈이었다. 민주당은 공조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것은 법무부의 몫이라고 지적한다. 검찰이 스스로 잘라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송부를 결정한 검사는 법무부에 보고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하나다. 왜 검사는 장관 딸의 사건을 스스로 정리했는가.
수사의 다른 장면도 드러났다. 경찰은 1년 8개월 동안 압수수색 영장을 한 번도 신청하지 않았다. 피고발인인 한 의원 배우자는 서면 조사 한 번이 전부였다. 반면 고발인들은 네 차례, 두 차례 불려 나와 대면 조사를 받았다. 공조가 막힌 뒤 추가 요청도 없었다. 그리고 2023년 12월, 불송치로 끝났다.
한 의원은 반박한다. 저작권자의 승낙까지 받은 사안이고, 문제 될 것이 아예 없으며, 민주당의 망상이라고. 그렇다면 승낙의 내용을 밝히면 된다.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받았는가. 해명이 간단할수록 공개도 간단해야 한다.
출발선이 다른 아이
딸이 다닌 곳은 인천 송도의 한 국제학교다. 유명한 학교다. 외국인학교와 달리 해외 거주 요건이 없다. 미국 학력과 한국 학력을 모두 인정받는다. 경쟁률은 높다. 연예인과 법조인의 자녀가 많이 다닌다고 알려져 있다.
학비는 고등학교 기준 한 해 4,500만 원이다. 유치원부터 졸업까지 다니면 순수 학비만 6억~7억 원이다. 통학 버스, 급식, 클럽 활동, 학원과 과외는 따로다. 이 학교를 고르는 이유는 분명하다. 해외 명문대 진학이다. 한 해 졸업생 73명 가운데 71명이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같은 해외 대학으로 갔다는 보도도 있다.
비싼 학교에 다닌 것은 죄가 아니다. 부모가 자녀 교육에 돈을 쓰는 것도 죄가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돈과 인맥이 무엇을 만들었는가. 그리고 그것이 아이 자신의 실력으로 포장되었는가.
여섯 편의 논문, 한 사람의 이름
딸은 고등학생 때 해외 학술지에 영어 논문을 여럿 올렸다. 단독 저자로 이름을 올린 글의 주제를 보자. 의료 분야 머신러닝. 국가 부채와 경제 이론. 미국 반독점법의 현대화. 팬데믹 이후 공급과 수요. 파키스탄의 사회적 불평등. 코소보의 교육·의료 개혁.
보건, 경제, 법학, 국제분쟁. 한 사람이 다루기엔 너무 넓다. 속도는 더 놀랍다. 이 여섯 편이 2021년 하반기에 몰려 등록됐다. 세 편은 11월, 두 편은 12월에 작성됐다.
의문은 문서 안에서 나왔다. 파일의 작성자 정보에 '벤슨'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었다. 케냐 출신으로, 돈을 받고 과제와 논문을 대신 써주는 작가였다. 그는 한 언론에 "내가 쓴 글이 맞다"고 말했다.
한 의원 측의 해명은 이렇다. 온라인 튜터의 도움을 받았을 뿐 직접 돈을 주고 의뢰하지는 않았다. 정식 논문이 아니라 연습용 글이다. 입시에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 연습용 글을 왜 학술지에 올렸는가. 그 학술지도 문제다. 돈만 내면 심사 없이 실어주는, 이른바 약탈적 학술지로 지목된 곳이었다. 학계가 투고를 경계하는 곳이다. 논란이 커지자 논문은 학술지에서 내려졌다. 경찰은 업무방해 혐의를 무혐의로 판단했다. 학회에서 심사 자체가 없었다는 이유다. 심사가 없어서 방해할 업무도 없었다는 논리다. 법은 그렇게 닫혔다. 질문은 닫히지 않았다.
0.99달러짜리 전자책
딸은 2020년부터 2021년 사이 영어 전자책 열 권을 냈다. 기하학, 기초 미적분학, 세포 주기와 유사분열. 한 달에 네 권을 낸 때도 있었다.
이 가운데 수학 문제 풀이집이 문제가 됐다. 이미 해외에 공개된 남의 문제를 가져다 책으로 묶었다는 의혹이다. 책은 아마존에서 0.99달러에 팔렸다. 앞서 본 공조 요청이 바로 이 책 때문이었다.
경찰은 원저자의 고소가 없다며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했다. 책은 이후 아마존에서 사라졌다. 민주당은 묻는다. 0.99달러가 쟁점인가. 남의 것을 베껴 자기 이름으로 팔았느냐가 쟁점 아닌가. 한 의원은 저작권자의 승낙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승낙은 문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책값은 싸다. 그러나 책 열 권이라는 이력은 싸지 않다. 입시에서 '출판 경력'은 0.99달러로 환산되지 않는다.
앱과 상장, 그리고 돈으로 산 인터뷰
딸은 시청각 장애인을 돕는 앱을 만들어 미국의 앱 개발 대회에 냈다. 준결승까지 올랐다. 그런데 이 앱 개발을 전문가가 돈을 받고 도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조력자는 "방학 숙제라고 의뢰받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대회 주최 측에서 원본 파일을 받지 못했다. 제3자가 만들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며 덮었다.
봉사활동은 어떤가. 딸은 열네 살이던 2018년, 무료 온라인 과외 단체를 세웠다. 여러 나라 학생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2021년에는 봉사자 100여 명, 수혜 학생 500여 명, 누적 과외 2만 시간을 넘겼다고 소개됐다.
이 업적은 2021년 11월 미국의 한 매체 인터뷰로 알려졌다. 젊은 리더를 소개하는 기사였다. 그런데 이 인터뷰는 돈을 내고 실은 글이었다. 한 의원 측도 인정했다. 인터넷에서 찾은 미국 홍보대행사에 건당 4만 원가량을 냈다고 했다. 기사는 지금 없다.
그 '기사'에 담긴 미담도 흔들렸다. 복지시설에 컴퓨터가 부족해 기업에 이메일을 보냈고, 한 기업이 중고 노트북을 기부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기업의 임원과 한 의원 배우자가 지인 관계라는 보도가 나왔다. 엄마의 인맥이 딸의 리더십으로 바뀐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상장도 그랬다. 인터뷰에는 인천시장상, 서울시장상, 프루덴셜 공동체 정신상을 받았다고 적혔다. 인천시는 수상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한 의원 측은 시 산하 단체장에게 받은 상이라고 말을 바꿨다. 확인해 보니 위탁기관 센터장 명의였다. 프루덴셜 상은 미국 최대 규모의 청소년 봉사상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받은 것은 한국 내 사회공헌 재단 행사의 장려상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완전한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도 아니다. 작은 상은 큰 상이 되고, 센터장은 시장이 됐다. 과장은 이렇게 한 칸씩 부풀어 오른다.
가족이라는 스펙 공동체
이 모든 일을 딸 혼자 한 것은 아니었다. 딸의 이모, 곧 한 의원 배우자의 언니는 미국에서 대학 입시 컨설턴트로 일했다. 그 자녀들, 딸의 외사촌들도 미국 명문대를 준비했다.
활동은 서로 겹쳤다. 외사촌이 세운 봉사단체도 시청각 장애인을 돕는 앱을 만들었다. 그 홍보 영상에 한 의원 딸이 나온다. 딸이 세운 단체의 차별 반대 전시회 포스터에는 외사촌들 이름이 함께 올랐다. 전시회는 외할머니 소유 건물에서 열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2020년에는 사촌들과 영어 온라인 매체를 만들었다. 남의 기사를 단어만 바꿔 올렸다는 표절 의혹도 받았다. 논문 몇 편은 서로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한 사람의 스펙이 다른 사람의 스펙이 된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준다. 그 사촌들도 결국 아이비리그에 합격했다고 알려졌다.
사촌끼리 좋은 일을 함께하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입시 컨설턴트가 설계하고, 가족이 무대를 깔고, 돈이 빈칸을 채웠다면 어떨까. 그것은 봉사가 아니라 기획이다. 성취가 아니라 연출이다.
한동훈이 세운 잣대
이 의혹이 유독 무겁게 들리는 이유가 있다. 한동훈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그는 검사 시절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를 지휘했다. 표창장 한 장, 인턴 증명서 한 장이 '공정을 무너뜨린 범죄'가 됐다. 압수수색은 수십 차례 이어졌다. 그는 늘 공정을 말했다. 법 앞의 평등을 말했다.
그런데 자기 딸의 의혹 앞에서는 말이 달라진다. 연습용이다. 입시에 활용하지 않았다. 승낙을 받았다. 망상이다. 그리고 수사는 영장 한 장 없이 끝났다.
물론 차이는 있다. 조국 전 장관 딸의 서류는 실제 입시에 쓰였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한 의원 측은 딸의 활동이 입시에 쓰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경찰도 범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점은 분명히 적어둬야 한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입시에 쓰지 않을 글을 왜 학술지에 실었는가. 입시와 무관한 인터뷰에 왜 돈을 냈는가. 상의 이름은 왜 부풀렸는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의혹을 확인할 통로는 왜 검찰에서 막혔는가. 확인하지 않았으니 결백하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확인하지 않았으니 모른다는 말이 정확하다.
남의 딸이면 '근원적 범죄'이고 내 딸이면 '경미한 사안'인가. 잣대가 사람을 가린다면 그것은 공정이 아니다. 특권이다.
실력으로 포장된 배경
이 이야기는 한 가족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 한 의원의 장인은 검사장 출신이다. 배우자는 대형 로펌 변호사다. 처남도 검사다. 본인은 검사, 장관, 여당 대표를 거쳐 국회의원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법조 엘리트 가문이다.
이런 집안이 왜 그토록 미국 명문대에 매달렸을까. 답은 어렵지 않다. 학벌은 가장 세련된 상속 수단이다. 돈은 세금이 붙지만 학벌은 붙지 않는다. 땅은 빼앗길 수 있지만 졸업장은 빼앗기지 않는다. 그리고 학벌은 '노력의 결과'라는 포장지를 두르고 있다.
교육은 한때 계층 이동의 사다리였다. 가난한 집 아이도 공부하면 올라갈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사다리를 오르는 데 돈이 든다. 국제학교 학비, 입시 컨설턴트, 대필 작가, 홍보대행사. 자산 격차가 교육 격차를 낳는다. 교육 격차가 다시 자산 격차를 낳는다. 그렇게 계급이 굳어진다.
더 큰 문제는 그 과정이 '실력'으로 기록된다는 점이다. 부모의 재력은 아이의 능력이 되고, 엄마의 인맥은 아이의 리더십이 된다. 대행업체의 손은 아이의 재능이 된다. 이력서에는 그 차이가 적히지 않는다.
편법이 성공 공식이 된다면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사람이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되고, 고위 공직자가 되고, 기업의 경영자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그들은 편법을 편법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이겨왔기 때문이다. 남이 대신 쓴 글에 자기 이름을 붙여본 사람은 남의 공을 가로채는 데 거리낌이 없다. 작은 상을 큰 상으로 부풀려본 사람은 숫자를 부풀리는 데 망설임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기회를 남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사다리를 오른 사람이 사다리를 걷어차는 일은 흔하다. 자기 자녀를 위해 같은 길을 다시 깔 것이다. 특권은 그렇게 대물림된다. 그들은 법의 잣대를 선택적으로 쓸 것이다. 반대편에는 엄격하고 자기편에는 너그러울 것이다. 이미 그런 장면을 우리는 보고 있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자는 평범한 청년들이다. 학원비를 아끼며 독학하는 학생. 아르바이트를 하며 봉사 시간을 채우는 학생. 대필 작가도 홍보대행사도 모르는 학생. 이들에게 "노력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 말은 점점 공허해진다. 공허함은 냉소가 되고, 냉소는 포기가 된다. 포기한 청년이 많은 사회에 미래는 없다.
다시 그 이력서를 본다. 논문, 전자책, 앱, 봉사단체, 언론 인터뷰, 상장, 그리고 MIT. 한 줄 한 줄이 반짝인다. 그러나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 그 빛이 누구의 손에서 나왔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모르는 이유는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인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한동훈 의원은 늘 '팩트'를 말해왔다. 이제 그 팩트를 내놓을 차례다. 승낙서를 공개하고, 공조 불송부의 결재 과정을 밝히고, 멈춘 수사를 다시 열면 된다. 떳떳하다면 잃을 것이 없다. 공정은 남을 향할 때가 아니라 나를 향할 때 증명된다. 남의 딸을 털던 손이 내 딸 앞에서 멈춘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선택이다. 국민은 그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
*참조 : 뉴스토마토 <김창현의 창> 이은혜 위원
https://www.youtube.com/watch?v=hstyK4WA2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