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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 정부가 박기창 주우크라이나 대사를 불러들였다. 항의의 뜻으로 대사를 소환한 것은 2008년 독도 문제로 주일대사를 부른 뒤 18년 만이다. 이튿날 아침, 나경원 의원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감사 서한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항의했고, 야당 중진은 환영했다. 같은 나라에서 하루 사이에 나온 두 개의 목소리다.
이 장면은 단순한 여야 공방이 아니다. 전쟁 중인 나라의 지도자가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 정치는 그 시선에 어떻게 답하고 있는가. 두 질문이 함께 걸려 있다.
사면초가의 젤렌스키
젤렌스키의 처지부터 보자. 전쟁은 4년 7개월째다. 전선은 굳었다. 러시아도 더 밀고 들어가지 못한다. 우크라이나도 되찾지 못한다. 남은 것은 병력과 드론을 갈아 넣는 지루한 소모전이다.
안에서도 흔들린다. <시사인> 방송에서 러시아 전문가 이문영 교수는 젤렌스키의 국내 지지도가 크게 떨어졌다고 짚었다. 드론 전쟁을 이끈 국방장관이 물러났다. 측근을 둘러싼 부패 의혹이 이어진다. 대선은 계엄령 연장으로 미뤄지고 있다. 이 교수는 지금 선거를 치르면 젤렌스키가 이기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밖에서도 녹록지 않다. 미국은 종전 압박을 이어갈 뿐만 아니라 최근엔 러시아에 대한 제재까지 완화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지원은 예전 같지 않다. 전쟁을 멈추면 정치적 입지가 흔들린다. 전쟁을 이어가려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젤렌스키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닥치는 대로 전쟁의 판을 키우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만의 전쟁이 아니라 '모두의 전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지원이 끊기지 않는다. 그래야 자신의 자리도 지킬 수 있다.
유엔 연설은 우연이 아니었다
9월 24일, 젤렌스키는 유엔총회 연단에 섰다. 그리고 북한군 포로 두 명이 한국으로 갔다고 공개했다. 정부는 우크라이나 측이 먼저 "비공개로 하자"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해석이 달랐다고 한다. 정부는 사과를 요구했다. 돌아온 메시지는 기대에 못 미쳤다.
왜 하필 유엔 연단이었을까. 김종대 전 의원은 이를 "확전 시나리오"로 읽었다. 한국이 이미 이 전쟁에 연결돼 있다는 신호를 세계에 보냈다는 것이다. "북한이 러시아 편에 섰으니까 한국은 우크라이나 편에 서야 한다" 는 논리를 국제무대에 깐 셈이다.
공격은 이어졌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한국산 경유가 러시아로 흘러갔다는 보도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이 내용은 이미 8월에 로이터가 다룬 일이었다. 다시 꺼낸 가디언도 제재 위반이나 한국법 위반은 아니라고 적었다. 낡은 의혹을 새것처럼 포장해 한국을 협박한 것이다.
거짓과 협박을 기반으로 하는 젤렌스키의 위험한 외교는 한국이 처음도 아니다. 2023년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난민 수십만 명을 받아줬다. 그런데 곡물 수입 문제로 갈등이 생기자 젤렌스키는 유엔 연설에서 폴란드를 겨냥했다. 그리고 WTO에 제소했다. 도와준 나라의 등을 치는 외교. 이번에 한국이 그 대상이 됐다.
물론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군 포로를 보내준 결정은 고마운 일이다. 러시아와 맞교환했다면 더 많은 자국민 포로를 데려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와 원칙은 별개다. 고마운 일은 고마운 일이다. 약속을 어긴 일은 어긴 일이다. 정부의 대사 소환은 후자에 대한 최소한의 답이다.
분명한 것은 세계 인구 85%에 해당하는 나라들이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시아에서 제재에 나선 나라는 손에 꼽는다. 한국은 그중 하나다. 독자 제재 품목만 3천 개가 넘는다. 한국이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돈은 7억 달러 가까이 된다. 러시아와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감수했다. 교민과 기업의 손실도 감수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유엔 연단의 폭로와 '러시아를 돕는 한국'이라는 프레임 공격이다.
나경원 의원의 서한이 위험한 이유
나 의원의 서한을 다시 읽어 보자. 몇 대목이 눈에 걸린다.
첫째, 서한은 젤렌스키의 유엔 연설을 칭찬한다. 바로 그 연설이 이번 갈등의 출발점이다. 정부가 항의한 행위를 야당 중진이 높이 평가했다. 젤렌스키 입장에서 이보다 반가운 신호가 있을까. 한국 안에서도 정부의 항의가 지지받지 못한다고 착각할 수 있다.
둘째, 서한은 젤렌스키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쓴다. "오늘은 우크라이나 차례지만, 내일은 한국 차례일 수 있다." 한국도 자유와 독재를 가르는 전선에 산다고 적었다. 이것이 바로 젤렌스키가 원하는 문장이다. 러-우 전쟁에 남한과 북한 간의 분쟁을 하나로 묶으려는 젤렌스키의 프레임에 화답하는 꼴이다. 한국을 전쟁 당사자의 자리로 끌어당기는 아주 위험한 문장이다.
셋째, 서한의 형식이다. 국회 문장이 찍힌 서한지에 "우리 국회의원들은"이라는 복수 주어를 썼다. 개인의 소신 표명이 아니라 국회의 뜻처럼 읽힌다. 외국 정상이 받아 들면 더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은 “18년 만의 대사 소환 바로 다음 날, 젤렌스키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며 자국 정부를 비난했다”고 비판했다. 외교는 한 목소리일 때 힘이 생긴다. 두 목소리는 상대에게 틈을 보여준다.
넷째, 포로들의 이야기다. 서한은 두 사람을 실명 일부와 함께 거론했다. 그리고 "김정은이 화폐처럼 쓰는 세뇌된 노예"라고 적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제네바 협약을 들어 포로는 대중의 호기심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아직 북한에 가족을 둔 사람들이다. 정치의 언어가 그들을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또 서한에는 이승만 정부의 반공포로 석방이 자랑스러운 역사로 나온다. 포로의 자유 의사를 존중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정이 남긴 다른 결과도 있다. 김종대 전 의원은 그 일이 한국이 정전협정 당사자에서 빠지는 결정타가 됐다고 짚는다. 원칙을 세운 대가로 협상의 자리를 잃었다. 그 불이익은 지금도 이어진다.
같은 장면을 다시 보자. 전쟁 중 포로를 제3국에 보내는 일은 훗날 종전 협상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제네바 협약은 포로 송환을 종전 이후의 일로 본다. 지금 그 결정을 한국 정치인이 앞장서 찬양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러시아의 시선에서 한국은 '포로를 빼돌린 쪽'과 한 몸이 될 수도 있다.
대가를 치를 곳은 키이우가 아니라 서울이 될 수도 있다
전쟁에 휘말리는 일은 선전포고로 시작되지 않는다. 작은 문장들로 시작된다. 당신의 전쟁이 곧 우리의 전쟁이다. 오늘은 당신 차례, 내일은 우리 차례. 이런 말이 쌓이면 무기 지원 요구가 따라온다. 이어서 '왜 아직도 안 보내느냐'는 압박이 온다.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여러 차례 지원 약속을 했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몇 해째 한국에 무기를 요구해왔다. 이에 발맞춰 일부 해외 언론에는 한국이 나서야 한다는 수상한 칼럼까지 실렸다. 국내에서도 파병론이 고개를 든다. 우크라이나, 중동, 그리고 한반도. 전쟁의 축들이 하나로 묶이는 순간, 가장 위험한 곳은 휴전선 앞이다.
한국은 정전 상태의 나라다. 북한과 맞붙은 나라다. 이 조건에서 다른 나라의 전쟁 논리를 빌려 쓰는 것은 불씨를 들여오는 일이다. 북한은 이미 러시아 편에 섰다. 한국까지 반대편에 서면 그 전쟁은 남북 대리전이 된다. 그 대가를 치를 곳은 키이우가 아니라 서울이다.
야당은 정부를 비판할 수 있다. 대사 소환이 지나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국회에서 따지고, 언론에서 말하면 된다. 그러나 갈등 상대국 정상에게 편지를 보내 자국 정부를 깎아내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것은 비판이 아니라 젤렌스키에게 백지수표를 건네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외교의 최전선에서 정부와 정당이 다른 말을 하면 누가 웃는가. 그 틈을 파고드는 쪽이다. 지금 그 틈을 가장 원하는 사람은 판을 키우고 싶은 자다. 젤렌스키는 한국을 자기 전쟁의 한 장면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나경원 의원은 젤렌스키의 그 욕망에 불쏘시개를 던져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그 서한은 아주 위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