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도 안 되고 정말 이상한 미치광이 트럼프가 등장했을 때 늘 따라붙는 의문이 하나 있다. 도대체 민주당은 어디에 있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도대체 지난 20여 년간 민주당은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대중들에게 외면받게 된 것일까?
뉴욕의 지하철역 앞에서 한 청년이 전단을 나눠 준다. 월세를 동결하겠다고 한다. 버스를 무료로 만들겠다고 한다. 동네마다 시가 운영하는 식료품점을 세우겠다고 한다. 사람들은 처음에 웃었다. 그 청년이 뉴욕 시장이 됐다. 조란 맘다니다.
비슷한 시기, 중서부 위스콘신에서도 한 이름이 떠올랐다. 식당을 운영하던 요리사 출신 주 하원의원, 프란체스카 홍이다. 둘 다 당의 주류가 아니다. 둘 다 워싱턴의 계산법을 따르지 않는다. 한 사람은 이겼고, 한 사람은 졌다. 그러나 두 사람이 던진 질문은 아직 살아 있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사람들이 오래 기다린 말을 이들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을 정작 해야 할 민주당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왜 그 말을 잃어버렸나. 그 답을 찾으려면 오바마와 바이든, 두 대통령의 16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노동자의 당은 어떻게 엘리트의 당이 되었나
미국 민주당은 원래 노동자의 당이었다. 공장 노동자, 이민자, 노조원이 당의 뼈대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이 그 상징이다.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나라. 그것이 민주당의 약속이었다. 노조 회관과 교회 지하실, 동네 식당. 민주당의 뿌리는 그런 곳에 있었다.
언제부턴가 당의 얼굴이 바뀌었다. 명문대 졸업장, 로펌과 컨설팅 회사, 실리콘밸리와 월가의 후원금. 당을 움직이는 손이 달라졌다. 한국적 표현으로 말한다면 '강남좌파'들이 민주당의 다수가 된 것이다. 정책은 세련돼졌다. 그만큼 서민의 식탁과는 멀어졌다.
세계화의 파도가 공장 지대를 덮쳤다. 1990년대 빌 클린턴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밀어붙였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도 지지했다. 값싼 수입품은 소비자를 웃게 했다. 그러나 그 물건을 만들던 노동자는 일터를 잃었다.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 미시간의 소도시들이 그렇게 비어갔다.
공장이 문을 닫을 때 민주당은 '세계화의 불가피성'을 말했다. 집값이 치솟을 때는 '시장 원리'를 말했다. 쉰 살 넘은 용접공에게는 코딩을 배우라고 했다. 월세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돌아온 것은 정교한 정책 보고서였다. 위로도, 해법도 아니었다.
월가는 구하고, 집주인은 놓쳤다
2008년 금융위기는 오바마 시대의 출발점이었다. 희망과 변화를 외친 젊은 대통령. 기대는 컸다. 첫 시험대는 무너진 금융이었다.
정부는 금융권 구제금융을 이어받아 은행을 살렸다. 위기를 부른 월가 경영진 가운데 감옥에 간 거물은 사실상 없었다. 구제금융을 받은 회사들의 보너스 잔치 소식도 이어졌다. 그 사이 수백만 가구가 집을 잃었다. 물론 서민을 위한 대책도 있었다. 주택담보대출 조정 프로그램(HAMP)이다. 그러나 실적은 목표에 크게 못 미쳤다. 서류는 복잡했고, 은행은 느렸다. 은행은 살아났고, 집은 압류됐다.
2011년 뉴욕 주코티 공원에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가 모였다. "우리는 99%다." 분노의 화살은 민주당 정부로도 향했다. 서민이 기억한 것은 회복의 숫자가 아니었다. 누가 구조됐고, 누가 버려졌느냐였다. "누구를 위한 구조였나?" 이 물음이 이후 민주당을 따라다녔다.
"총과 종교에 매달린다"는 시선
정책보다 오래 남는 것이 있다. 말이다. 그리고 그 말에 담긴 시선이다. 2008년 대선 경선 때 오바마는 샌프란시스코 후원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자리를 잃은 소도시 유권자들이 "총이나 종교에 매달린다"고. 그들의 좌절을 설명하려던 말이었다. 그러나 엘리트의 속내로 읽혔다. 부유한 후원자들 앞에서 가난한 유권자를 분석하는 장면. 그 구도 자체가 메시지였다.
8년 뒤 힐러리 클린턴은 트럼프 지지자 절반을 "개탄스러운 사람들의 바구니(Basket of deplorables)"라고 불렀다. 같은 시선의 반복이었다. 트럼프 후보의 지지자들이 그 말을 모자와 티셔츠에 새겼다. 모욕이 훈장이 됐다.
2016년, 오바마를 두 번 찍었던 200여 개 카운티가 트럼프로 돌아섰다. 상당수가 러스트벨트(미국 북부의 오대호와 애팔래치아산맥 사이의 중공업 중심 공업지대)였다. 민주당의 '푸른 장벽'이라던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가 무너졌다. 조롱받은 쪽은 표로 답했다. 정치는 그렇게 정산된다.
약속과 현실 사이의 틈
오바마케어는 무보험자를 크게 줄였다. 성과는 분명했다. 그러나 출발부터 신뢰에 금이 갔다. "지금 보험이 마음에 들면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오바마가 거듭한 약속이다. 지켜지지 않았다. 수백만 명이 기존 보험 해지 통보를 받았다. 이 말은 2013년 '올해의 거짓말'로 꼽혔다.
대가는 빨랐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하원 63석을 잃었다. 자유무역 기조도 그대로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밀어붙였다. 공장 지대는 이를 또 하나의 일자리 유출로 받아들였다.
2016년 대선에서는 양당 후보 모두 TPP에 반대했다. 민주당 대통령의 역점 사업이 자기 당 후보에게조차 버림받은 셈이다.
"거시경제는 사상 최고" 바이드노믹스
바이든은 달랐어야 했다. 그는 '스크랜턴 출신 노동자의 아들'을 내세웠다. 아이비리그 엘리트가 아니라는 점이 그의 무기였다. 2020년 그는 러스트벨트를 되찾았다.
출발은 그 이미지 그대로였다. 2021년 1조 9천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법을 통과시켰다. 현금이 가계로 들어갔다. 돈은 풀렸고, 물가는 뛰었다. 2022년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1%. 40여 년 만의 최고치였다. 달걀, 우유, 휘발유. 집세는 더 무서웠다. 행정부는 처음에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이라고 했다. 일시적인 것은 없었다.
이후 백악관은 '바이드노믹스'라는 이름으로 성과를 홍보했다. 실업률은 낮았다.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그러나 서민은 뉴스가 아니라 마트 계산대 앞에서 경제를 체감했다. 밤잠을 설치는 사람에게 "거시경제는 사상 최고"라는 말은 차가운 메아리였다.
차별을 없애겠다는 정당이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대중을 하대
더 깊은 균열은 문화에서 생겼다. 민주당은 정체성 정치에 몰두했다. 올바른 용어와 담론이 정치의 중심에 섰다. 단어 하나를 잘못 쓰면 낙인이 찍혔다. 다른 생각을 말하면 혐오자로 몰렸다. 평범한 유권자들은 입을 닫았다. 그리고 투표장에서 말했다.
2021년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가 상징적이다. 1년 전 바이든이 10%포인트 넘게 이긴 주였다. 민주당 후보 테리 매콜리프는 토론에서 학부모가 학교 교육 내용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학부모들은 분노했다. 버지니아는 공화당 주지사를 뽑았다.
2020년 거리에 퍼진 '경찰 예산 삭감' 구호도 그랬다. 당 지도부는 거리를 뒀다. 그러나 대중의 기억 속에서 그 구호는 민주당의 얼굴이 됐다. 치안 불안에 가장 시달리는 이들은 교외의 부유층이 아니었다. 도심의 서민과 소상공인이었다.
차별을 없애겠다는 정당이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대중을 하대했다. 그 순간 민주당의 도덕적 정당성은 뿌리째 흔들렸다.
국경과 치안, 미뤄진 결단
바이든 집권 초기, 남부 국경의 불법 입국 단속 건수는 연간 200만 건을 넘겼다. 사상 최대 규모였다. 텍사스 주지사는 이민자를 버스에 태워 북부 도시로 보냈다. 버스는 뉴욕과 시카고까지 닿았다.
민주당 도시들이 비명을 질렀다. 뉴욕의 에릭 애덤스 시장은 이민자 문제가 뉴욕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진보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2022년 시민들이 진보 성향의 지방검사 체사 부딘을 소환 투표로 끌어내렸다. 민주당 텃밭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행정부가 망명 제한 행정명령을 낸 것은 2024년 6월이었다. 대선을 다섯 달 앞둔 때였다. 너무 늦었다. 3년 넘게 미룬 결단은 정책이 아니라 선거용으로 읽혔다.
표밭이라는 민주당의 착각
민주당은 오랫동안 하나의 신화를 믿었다. 인구 구성이 바뀌면 이긴다는 믿음이다. 유색인종 유권자가 늘수록 미래는 밝다고 여겼다. 착각이었다. 당 안팎에서 '라틴엑스(Latinx)'라는 성중립 용어를 썼다. 정작 히스패닉 다수는 이 단어를 쓰지 않았다. 그들을 존중한다며 만든 말이 그들의 언어가 아니었다.
히스패닉과 흑인 유권자들도 하루하루를 사는 실용적인 시민이었다. 신앙을 중시했고, 작은 가게를 꾸리는 소상공인이 많았다. 고물가와 치안, 일자리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학자금 탕감도 같은 문제를 드러냈다. 혜택은 대졸자에게 돌아갔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노동자는 왜 남의 빚을 대신 갚느냐고 물었다.
결과는 2024년 대선에서 나왔다. 트럼프는 히스패닉 표의 40%대 중반을 얻었다. 민주당은 노동자층과 비백인 서민층에서도 표를 잃었다. 트럼프가 좋아서라기보다 민주당에 실망한 표였다. 민주당은 그들을 '설득해야 할 유권자'로만 봤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보지 않았다.
내로남불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는 민주당
민주당의 몰락은 상대가 강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안에서 먼저 무너졌다. 기득권이 된 당은 세 가지 병을 앓는다.
첫째, 자리 지키기다. 원로가 물러나지 않고, 새 얼굴은 줄을 서야 한다. 바이든의 나이 문제가 그랬다. 건강을 묻는 목소리는 당 안에서 막혔다. 2024년 6월 TV 토론에서 모든 것이 드러났다. 바이든은 7월에야 물러났다. 해리스에게 남은 시간은 100여 일뿐이었다. 경선도, 검증도 없었다.
둘째, 내로남불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는 민주당, 말과 삶의 괴리다. 불평등을 비판하는 연설은 고급 후원 만찬장에서 나온다. 그 토론 직전, 할리우드 스타들이 총출동한 모금 행사가 열렸다. 몇 주 뒤 행사를 함께 연 배우 조지 클루니가 언론 기고로 바이든의 사퇴를 요구했다. 돈줄이 마르자 당이 움직였다. 유권자의 걱정보다 후원자의 판단이 먼저였다. 12월, 바이든은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뒤집고 차남 헌터를 사면했다. 법 앞의 평등을 말하던 정당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셋째, 내부 싸움이다. 당이 시민을 보지 않으면 서로를 본다. 누가 더 순수한지, 누가 배신자인지 따지느라 바쁘다. 정작 시민의 문제는 뒷전이다.
세 가지가 겹치면 당은 오만하고 배부른 돼지가 된다. 배가 부르니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으니 바깥소리를 듣지 못한다. 결국 바깥에서 새 세력이 문을 두드린다.
맘다니와 홍, 문을 두드리는 소리
맘다니의 승리는 이 공백을 정확히 찔렀다. 그는 거창한 이념을 앞세우지 않았다. 월세, 교통비, 장바구니 물가, 아이 돌봄. 뉴요커가 매일 부딪히는 문제를 직격했다.
민주당 경선의 상대는 앤드루 쿠오모였다. 전직 주지사이자 당 기득권의 상징이다. 후원금도, 조직도, 언론의 관심도 쿠오모 쪽이 컸다. 결과는 반대였다. 젊은 유권자와 세입자, 이민자 공동체가 맘다니 쪽으로 움직였다.
주류 정치인들은 그를 '비현실적'이라 불렀다. 그런데 정말 비현실적인 쪽은 누구였나. 월세로 소득의 절반을 내는 현실을 외면한 쪽이다. 맘다니는 그 현실을 말했을 뿐이다.
프란체스카 홍의 길도 닮았다. 그는 직접 식당을 운영하며 최저임금과 의료비, 인력난을 몸으로 겪었다. 그래서 그의 말에는 보고서의 냄새가 없다. 계산대 앞의 땀 냄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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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올해 8월 위스콘신 민주당 주지사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홍은 39.37%를 얻어 밀워키 카운티 행정책임자 데이비드 크롤리(39.78%)에게 0.41%포인트 차로 졌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두 자릿수 차이로 앞섰고, 경선 나흘 전 조사에서는 크롤리를 22%포인트 앞서기도 했다. 판세를 뒤집은 것은 당의 조직이었다. 크롤리는 현직 토니 에버스 주지사의 지지를 받았다. 당의 돈과 익숙한 이름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홍의 패배에는 또 다른 교훈도 있다. 선거 막판, 추수감사절을 없애자거나 경찰 예산을 삭감하자던 과거 SNS 글이 논란이 됐다. 그는 토론에서 구호로 통치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그러나 0.41%포인트는 그 구호의 무게였을지 모른다. 생활의 언어는 표를 모았고, 운동권의 구호는 표를 깎았다.
그래도 패배가 곧 실패는 아니다. 홍은 누가 이기든 위스콘신은 이미 바뀌었다고 지지자들에게 말했다. 불과 일주일 전 미시간에서는 진보 성향의 압둘 엘사예드가 민주당 상원 경선에서 이겼다. 그가 꺼낸 생활의 의제는 이제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이 됐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정치를 '관리'가 아니라 '생활'의 언어로 다시 썼다. 당의 문법이 아니라 시민의 문법으로 말했다. 맘다니의 승리와 홍의 패배는 같은 사실을 말한다. 시민은 새 정치를 원하고, 기득권은 아직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