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9월, 폴스타가 발표한 한 장의 집계표가 K팝의 위상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전 세계 투어 티켓 매출 1위에 방탄소년단(BTS)의 월드투어 '아리랑'(ARIRANG)이 이름을 올린 것이다. 38회 공연에 231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방탄소년단을 21세기 글로벌 팝을 대표하는 그룹으로 각인시켰고, 그 매출 규모는 지난해 최고 흥행작이었던 비욘세의 '카우보이 카터 투어'를 넘어섰다.
숫자만 보면 놀랍지만, 이 투어가 진짜로 흥미로운 지점은 매출표 바깥에 있다. 도시가 이들을 위해 조례를 바꾸고, 관광청이 콘서트를 국가적 문화 행사로 선포하며, 정치인들이 앞다퉈 이들을 명예 시민으로 예우하는 광경. 이것이 바로 '아리랑' 투어를 단순한 흥행 기록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만드는 이유다.
투어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그 파급력의 규모가 드러난다. 지난 4월 고양에서 시작된 이 투어는 34개 도시에서 85회 이상의 공연으로 구성된 역대 최대 규모로 기획됐다. 도쿄돔에서는 11만 명이 열광했고, 탬파 스타디움에서는 19만 명의 아미가 함께 '아리랑'을 떼창했다. 북미 5개 도시에서 펼친 15회 공연은 전 회차가 매진되며 약 84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4월 한 달간의 성적만으로도 7620만 달러(약 1148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빌보드 '톱 투어' 1위에 올랐다.
경제 효과를 다루는 언론들의 반응은 더 극적이다. 라스베이거스 현지 방송은 공연이 지역에 최대 2억 달러(약 3014억 원) 규모의 경제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했고, 플로리다 방송은 탬파 공연이 8억~9억 달러(약 1조 2000억~3000억 원)에 달하는 파급 효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단 2회 공연에 불과했던 엘파소에서도 7500만 달러 규모의 경제 효과가 발생했다는 집계가 나왔다. 콘서트 한 번이 도시 하나의 관광 산업 지형을 뒤흔드는 이런 현상을 두고 현지 언론들은 이미 'BTS노믹스'(BTSnomics)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부르고 있다.
투어가 문화를 넘어 지방 정부의 공식 의전 영역까지 파고들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콜롬비아 보고타 관광청은 공식 관광 사이트를 통해 이들의 방문으로 보고타가 2026년 세계 주요 음악 무대 중 하나가 됐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아르헨티나 라플라타 시의회는 한발 더 나아갔다. 지난 7월 정기 회의에서 방탄소년단을 '명예 외빈'(Huésped de Honor)으로 선정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는데, 이는 도시를 방문하는 귀빈이나 세계적인 문화예술계 인사에게 수여하는 최고 수준의 공식 예우다. 시의회가 밝힌 선정 이유는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에 미친 문화적 파급력과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확산한 공로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투어를 '비틀즈적 사건'으로 만드는 핵심은 음악 그 자체에 있다. 투어명이자 신보의 타이틀인 '아리랑'은 단순한 콘셉트가 아니라 실제 무대의 중심 장치다. 멤버 진은 알프스의 민요인 요들송이 세계적으로 널리 불린다는 점을 예로 들며, 전 세계 팬들에게 한국의 민요를 알려주고 같이 부르게 되어 기쁘다는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연출진 역시 민요 '아리랑'에 담긴 한(恨) 속에서 흥(興)을 찾는 순환과 조화의 흐름에 깃든 한국인의 강인함과 따뜻함을 무대에 구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일본 도쿄돔에서도, 미국 탬파에서도, 영어권이 아닌 관객들 앞에서도 수만 명이 한국어 가사를 한 소절 한 소절 따라 부르는 장면이 반복됐다. 비영어권 민요가 지구 반대편 스타디움에서 떼창되는 광경은 팝 역사에서도 흔치 않은 사건이며, 이것이야말로 언어와 국경을 넘어 하나의 멜로디로 세대와 문화를 묶어냈던 비틀즈의 유산과 가장 정확히 겹치는 장면이다.
이 담론의 다음 장은 오는 10월, 한 번도 완전체 공연을 연 적 없는 대륙에서 펼쳐진다. 방탄소년단은 10월 2일 콜롬비아 보고타를 시작으로 페루 리마, 칠레 산티아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라플라타), 브라질 상파울루까지 남미 5개 도시를 순회한다. 특히 콜롬비아·페루·아르헨티나는 완전체로서는 처음 무대에 서는 지역이며, 현지의 폭발적인 성원에 힘입어 리마·산티아고·부에노스아이레스 공연이 각 1회씩 추가 편성됐다.
각국 정부와 관광 당국의 환대는 이미 북미·유럽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라플라타 시와 주정부는 10월 21일과 23~24일 사흘간의 공연에 15만 명 이상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합동 안전·운영 대책을 마련 중이며, 이는 앞서 언급한 '명예 외빈' 선정과 맞물려 한 도시 전체가 방탄소년단을 위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칠레의 공식 관광 플랫폼 칠레 트래블은 산티아고 공연을 국가적 문화·유산 이벤트로 소개하고 있고, 페루 리마의 분수공원에서는 이들을 환영하기 위한 댄스 커버 대회와 영상 상영 프로그램이 이미 진행됐다. 콘서트가 열리기도 전에 도시 곳곳이 팬 행사로 들썩이는 이런 풍경은, 아이돌 투어가 어느새 국가적 문화 이벤트의 지위를 얻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여기에 더해 10월 24일 부에노스아이레스와 10월 30일 상파울루 공연은 전 세계 80여 개국, 3800여 개 극장에서 실시간 중계될 예정이다. 남미 현지에 직접 갈 수 없는 전 세계 팬들이 같은 시각 스크린 앞에 모여 '아리랑'을 함께 부르는 이 장면은, 한 무대의 감동이 실시간으로 지구 전체에 동시 복제되는 21세기적 방식의 '비틀마니아'라 할 만하다. 비틀즈가 위성 생중계 '아워 월드'를 통해 처음으로 전 지구적 동시성을 만들어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병역을 마치고 돌아온 완전체 방탄소년단이 도시 하나하나를 명예 외빈과 국가적 행사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극장 스크린을 통해 지구 반대편까지 그 감동을 실시간으로 이어붙이고 있다는 사실은 이 그룹의 영향력이 앨범 판매량이나 스트리밍 수치를 넘어선 지 오래라는 방증이다. 아리랑 선율이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영어가 뒤섞인 관중석에서 한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순간, 우리는 대중음악이 여전히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언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언어의 최전선에 지금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서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