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에서 1시간 넘게 갇혀 있었습니다

김용석 기자

등록 2026-09-20 10:46


어제 오후였습니다. 일을 마치고 다음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데 길이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터널 안 앞에 가던 트럭에 불이 났다고 하더군요.

터널에서 1시간 넘게 갇혀 있었습니다. 답답한 걸 싫어하는데 꼼짝없이 4차선을 꽉 매운 차들과 함께 주행인지, 정차인지 모르는 속도로 터널 속에 있었습니다. 다행히 외곽 순환을 타기 전 화장실을 다녀 와 조금 맘이 편했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웃깁니다. 이런 순간에도 규범에 묶여 하지 않아도 될 좀스런 걱정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답답함에 오디오를 틀어 음악을 들었습니다. 이곡 저곡을 듣고 있는데 들국화의 탁하면서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들국화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가까운 형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오래 전 일로 만나 20년 가까이 정을 나눈 형입니다. 조용히 술자리에 앉아 있다 분위기를 타면 술자리를 휘어잡는 멋진 형입니다.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를 아주 잘 불렀던 형이기도 하고요.

전화를 했습니다. 벨이 울리고 곧 전화를 받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냥 지낸다고 하십니다. 일은 어떠냐고 물으니 이제 일은 많이 줄였다고 하십니다. 2년 전 형은 아끼는 큰아들을 잃었습니다. 밝고 쾌활하던 큰아들을 잃고 형은 말수가 줄고 얼굴이 어두워졌죠.

20대에 형을 잃었던 저도 힘들어하셨던 부모님을 봐서인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을 조금은 압니다. 제가 술 사들고 가겠다고 하니 언제든 오라고 하십니다.

요즘은 일이 참 많습니다. 일이 많으면 별 일이 다 생깁니다. 하루하루가 스펙타클합니다. 꽁지에 불붙은 강아지처럼 지내다 문득 무위(無爲)가 무언지 알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힘을 빼고, 물 흐르듯이...' 지금까지 제가 무위(無爲)하면 떠올렸던 것들인데 아니더군요. 오히려 무위(無爲)가 더 적극적으로 분주하게 삶을 마주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주어진 일, 해야할 일, 해야할 것 같은 일을 피하지 않고 차분히 마주하는 것! 그리고 묵묵히 해내는 것이 무위란 걸 저절로 알게 됐습니다.

마주한 상황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되 결과가 자신이 바라는 어딘가로 가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만 없으면 그것이 무위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론 관찰자로 때론 플레이어로 삶을 즐기면 그만인 것이지요. 이미 이루어진 것이고, 이루어질 것이고, 이루어져야만 할 것들이니까요...

지금은 바다입니다. 홀로 배를 탔습니다. 친구들과 섬을 좀 걷기로 했는데 일이 갑자기 생겨 저 혼자 느즈막이 배를 타고 섬으로 가고 있습니다. 해는 지지 않았고 서해 바다는 고요합니다. 갈매기는 뱃전에 앉아 있고 저는 선실에 앉아 갈매기를 바라봅니다. 귓가에 김민기의 목소리인지 정태춘의 목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는 목소리로 바다를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고요합니다.

분주해도 삶이고, 고요해도 삶이고 그런가 봅니다. 꽉 막힌 터널이나, 사방이 열린 바다나 그립고, 외롭고, 풍요롭기는 매한가지이니 말입니다.

몇 주 전에 써 두곤 업로드 하지 않았던 글을 올립니다. 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 사진은 낡은 폰으로 10년 전 쯤 찍었던 고양시 대곡역에서 바라 본 노을입니다. 빌딩이 앞을 가려 이제 영원히 볼 수 없는 풍경이기도 하고요.



김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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