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logue Between a Thinker and AI" by thierry Ehrmann
인공지능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결국 인공지능에게 무언가를 읽혀보는 것이 아닐까. 이런 발상에서 출발한 실험이 최근 프랑스에서 주목받고 있다.
Artmarket.com의 티에리 에르만(Thierry Ehrmann)이 집필한 『사상가와 AI의 대화(Dialogue Between a Thinker and AI)』가 그 무대다. 수백 시간에 걸친 인간과 AI의 대화, 사유, 질문과 모순을 거쳐 완성된 이 책은 프랑스어판과 영어판으로 실제 인쇄·출간됐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핵심은 출간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같은 책, 다섯 개의 시선
제작진은 이 책의 전체 텍스트(말뭉치)를 OpenAI 계열의 Astra, Perplexity, DeepSeek, Google Gemini, xAI의 Grok 등 오늘날 대표적인 다섯 개 AI 시스템에 동일하게 제공했다. 목적은 단순한 독후감이나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다섯 AI가 같은 텍스트에서 각기 어떤 개념을 포착하고, 어떤 주장을 중심으로 간주하며, 어디서 해석이 갈라지는지를 관찰하는 데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이번 실험의 독특한 지점이다. 각 AI는 다른 AI가 작성한 분석까지 읽도록 요청받았다. 이른바 '메타 리딩(meta-reading)'이다. Gemini는 Grok의 분석을 읽고 반응하고, DeepSeek은 Astra의 비평에 응답한다. 이렇게 생성된 논평은 다시 새로운 말뭉치가 되어 또 다른 AI의 분석 대상이 된다. 비평이 비평을 낳고, 그 연쇄 자체가 관찰 자료로 축적되는 구조다.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왜 다르게 보는가"
제작진은 이 실험이 AI 모델 간 우열을 가리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관심은 정반대 지점에 있다. 동일한 텍스트 앞에서 서로 다른 아키텍처를 가진 AI들이 정확히 같은 것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 자체가 유의미한 정보라는 것이다.
수세기 동안 인간은 문학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비평가의 해석을 참조해왔다. 이번 실험은 그 방향을 뒤집는다. 책을 매개로 삼아, 그 책을 읽는 주체인 AI를 이해하려는 시도다. 결과적으로 한 권의 책이 여러 AI 아키텍처를 비추는 일종의 '인지적 거울'로 기능하게 된다.
최종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몫
제작진은 이 실험이 인간의 해석 권한을 AI에 넘기려는 시도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오히려 인간에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한다는 설명이다. 여러 AI의 독해 결과를 비교하고, 의심하고, 맥락을 짚어가며 최종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다. AI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독해'이고, 인간이 관찰하는 것은 그 독해들 사이에 벌어진 '간극'이라는 설명이다.
이로써 『사상가와 AI의 대화』는 단순한 출판물을 넘어, 책이자 말뭉치이며 동시에 인공지능의 다원성을 탐구하는 열린 실험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애초 인간이 읽도록 쓰인 이 책은 이제, 인간이 'AI가 책을 읽는 방식'을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 되고 있다.
출처: Artmark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