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한인사회, 왜 한국인들 스스로가 소녀상을 치우자고 말하는가

장기영 기자

등록 2026-09-16 09:05

친일과 독재,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만든 '가치의 공백'…호주 한인사회 '소녀상' 갈등

호주 멜버른 평화의 소녀상 =©호주한인회


"호주 멜버른 평화의 소녀상을 지켜주세요!"

호주 멜버른 평화의 소녀상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 합니다.

멜버른 평화의 소녀상은 해외에 세워진 10번째 소녀상입니다. 우리 동포들과 뉴질랜드, 화성시가 함께 뜻을 모아 세운 소중한 평화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오는 10월 17일, 호주 빅토리아주 한인회가 소녀상의 존치 여부를 심의·의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위한 조형물이 아닙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평화와 인권의 상징입니다.

이제 생존 피해자는 단 다섯 분뿐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것은 피해자들의 역사를 지키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일입니다.

국민 여러분, 멜버른 평화의 소녀상을 함께 지켜주십시오. 

—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블로그에서 


서미화 국회의원이 지난 9월 3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은 짧지만 절박했다. 호주 멜버른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 위기에 놓였으니 함께 지켜달라는 호소였다. 해외에 세워진 열 번째 소녀상이자, 동포와 뉴질랜드, 화성시가 뜻을 모아 세운 이 조형물이 오는 10월 17일 빅토리아주 한인회 임시총회에서 존치 여부를 표결에 부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 호소는 단순한 지역 뉴스를 넘어 하나의 질문을 한국 사회에 던졌다. 일본이 철거하라고 요구한 것도 아닌데, 왜 한국인들 스스로가 소녀상을 치우자고 말하고 있는가.


이번 사태를 단순히 '한인회 내부 갈등'으로만 읽는다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빅토리아주 한인회 임시총회 공고문을 보면 제1호 안건은 '평화의 소녀상 계속 설치 여부 및 정치적 중립성'이다. 소녀상의 역사적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단어가 안건명에 나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논쟁의 성격을 드러낸다. 한인회 측 설명대로 소녀상 주변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집회,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 반대 집회가 논란의 도화선이 됐다. 소녀상은 어느 순간부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조형물이 아니라, 한국 국내 정치 진영의 대리전이 벌어지는 무대로 취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멜버른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 애틀랜타 한인회에서는 소녀상을 건물 안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려는 시도가 나오면서 갈등이 불거졌고,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는 지역 단체가 시 정부의 설치 허가까지 받고도 일부 교민의 반발에 부딪혀 소녀상 건립 자체가 좌초 위기에 놓여 있다. 


2024년 시드니 한인회가 이종섭 대사 임명을 둘러싼 갈등을 두고 "10만 교민이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모국의 정치 갈등이 이 사이를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던 장면과 지금의 소녀상 논란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가지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진영 대립이 이제는 지구 반대편 교민 사회의 총회 안건지에까지 인쇄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소녀상이, 그리고 위안부 문제가 이 대리전의 첫 번째 표적이 되는가. 여기에 이 사태의 본질이 있다. 정의기억연대 한경희 이사장이 지적했듯, '위안부 문제는 이미 끝났다'는 일본 정부의 논리를 한국 내 일부 극우 세력이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 인식이 국경을 넘어 교민 사회까지 퍼져나간 결과가 지금의 사태다. 그런데 이 극우 담론이 국내에서 이토록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해방 이후 한국 사회가 친일 청산과 군부독재 청산이라는 두 개의 과제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는 역사적 실패와 만나게 된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출범 1년 만에 강제 해산됐고, 친일 부역자 상당수는 반공이라는 이름 아래 처벌은커녕 오히려 권력의 핵심으로 흡수됐다. 군부독재 시절의 인권유린과 역사 왜곡에 대해서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부분적이고 타협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가해자가 단죄되지 않고 오히려 사회의 주류로 남았던 역사는, '누가 옳고 그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즉 최소한의 도덕적 좌표를 지워버렸다. 


그 결과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이라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로 합의될 수 있어야 할 사안조차 '진영의 문제'로 재해석되고, 심지어 피해자를 모욕하는 세력이 국내 공론장 한켠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졌다. 가해와 협력의 역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규범의 경계선 자체가 흐릿해진다. 무엇이 단죄받아야 할 과거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으니, 피해자를 기리는 상징물조차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 청산, 이른바 '에퓌라시옹(épuration)'은 뼈아픈 대조를 이룬다. 2차대전 종전 직후 프랑스는 비시 정권에 협력한 인사들을 상대로 신속하고 광범위한 숙청에 나섰다. 비시 정권의 수반이었던 필리프 페탱은 대독 협력 혐의로 재판에 회부돼 사형을 선고받았고(이후 종신형으로 감형), 총리를 지낸 피에르 라발은 처형됐다. 


나치에 부역한 작가와 언론인들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문필로 협력을 정당화한 로베르 브라지야크 같은 지식인마저 총살형을 피하지 못했다. 물론 이 과정이 완벽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약식 처형과 대중적 응징이 뒤섞이며 과잉과 오판의 그림자도 짙게 남겼다. 


그럼에도 프랑스가 이 청산을 통해 분명히 한 것은 하나였다.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협력의 역사는 결코 정치적 입장의 문제로 되돌릴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 그리고 그 합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응분의 대가가 따른다는 원칙이다. 드골이 이끈 임시정부가 부역자 처벌을 국가 재건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청산 없이는 새로운 공화국의 정통성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친일과 독재라는 두 개의 청산 과제를 미완의 상태로 남겨둔 채 압축 성장과 민주화를 향해 달려왔다. 그 대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대신 새로운 세대의 정치적 자원으로 재활용된다. 위안부 문제를 '이미 끝난 정치적 논쟁'으로 재규정하려는 시도, 소녀상을 '특정 진영의 상징물'로 몰아가려는 시도는 바로 그 재활용의 결과물이다. 


프랑스가 협력의 역사를 국가의 이름으로 단죄함으로써 인권과 저항의 가치를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냈다면, 한국은 그 단죄를 미룸으로써 인권과 역사의 문제조차 진영 논리 앞에 무력해지는 사회를 만든 셈이다.


멜버른의 소녀상은 애초에 반전과 평화, 인권이라는 지극히 보편적인 가치를 위해 세워졌다. 2019년 건립 당시 회의록 어디에도 '임시 설치'라는 표현이나 철거 조건은 없었다. 그럼에도 7년 만에 이 조형물이 다시 표결대에 오른 것은, 소녀상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정치적 시선이 오염됐기 때문이다. 생존 피해자가 다섯 분밖에 남지 않은 지금, 이 논쟁이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명확하다. 가해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사회는, 피해자의 고통마저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협력자에게 책임을 물음으로써 지켜낸 것이 결국 '진실은 진영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이었다면, 지금 한국 사회와 해외 동포 사회에 필요한 것도 바로 그 믿음을 되찾는 일이다. 소녀상을 지키는 일은 그래서 한 조형물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무너진 사회적 규범의 최소선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장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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