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죄의식과 속죄라는 불변의 메시지를 던진 《오디세이》

아모스 기자

등록 2026-09-04 15:49



9월 3일 현재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통계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누적 관객 수 9,329,607명으로 이번 주말을 기점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할 것이 분명하다. 전 세계 매출액은 15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호메로스의 고전 서사시를 스크린에 옮긴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는 7월 17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를 휩쓸었고,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수준의 지지를 얻었다. 로튼토마토 비평가 점수는 95%까지 올라 놀란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 기록을 세웠고, 관객 점수 역시 그의 작품들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영화를 둘러싼 것은 팽팽한 찬반 논쟁이라기보다, 압도적인 지지와 일부의 신학적·문화적 반발이 공존하는 풍경에 가깝다.

 

2억 5,000만 달러의 제작비, IMAX 70mm 필름 카메라 전량 촬영이라는 거대한 스케일 뒤에 놀란이 담아낸 것은 영웅의 찬란한 귀환담이 아니다. 전쟁의 참화를 통과하며 조금씩 균열이 가는 한 인간의 초상이자, 그 균열을 스스로 마주하는 과정에 관한 영화다. 어쩌면 지금의 흥행은 우리 생애에 다시 만날 수 없는 대작영화라는 것 때문일 수도 있다. 

 

기존의 클래식 영화나 서사시들이 오디세우스를 지혜롭고 용맹한 영웅으로 그려냈다면, 놀란의 오디세우스(맷 데이먼)는 전쟁의 광기 속에 파멸해 가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영화는 트로이 목마라는 저명한 계략 뒤에 숨겨진 잔혹함과 그로 인해 파괴된 신성한 질서를 정면으로 조명한다. 트로이 함락 과정에서 아테나 신전을 더럽히고 손에 피를 묻힌 펠로폰네소스의 전사들은 고귀한 영웅이 아닌, 문명을 붕괴시키는 ‘바다의 사람들’에 불과했다.

 

이러한 재해석에 대해 비평가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한 저명한 비평가는 "놀란은 고전 신화를 현대적인 전쟁 트라우마 심리극으로 완벽히 재창조했다"며 "화려한 IMAX 비주얼 뒤에 흐르는 것은 전쟁이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파먹는가에 대한 처절한 고찰"이라고 평가했다. 관객들 역시 "우리가 알고 있던 영웅 오디세우스는 없다. 오직 죄책감에 시달리며 집으로 돌아가려 발버둥 치는 한 불쌍한 사내만 있을 뿐"이라며 신선한 충격을 표했다.

 

영화는 오디세우스의 내면적 추락과 회한의 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대사들을 정교하게 에피소드 곳곳에 숨겨 놓았다. 

 

“그 노래는 내가 지키지 못한 모든 약속들을 담고 있었고-. 그리고 그 노래는 내가 사실 집에 가고 싶지 않다는 걸 말해줬어 (It was the song of all the promises I've failed to keep-..And it told me I don't really want to go home)."

 

이 대사는 세이렌의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노래를 두 귀로 생생하게 감내했던 것처럼, 칼립소의 섬 오기기아에서 7년 동안 갇혀 있던 오디세우스의 절망을 관통한다. 그가 잃어버린 것은 단순한 이타카의 왕좌나 평화로운 가정이 아니다. 트로이의 목마를 기획하고 승리를 거머쥔 순간, 그는 자신의 순수한 인간성과 도덕적 기준을 이미 상실했다. 

 

칼립소가 제공하는 망각의 연꽃은 겉으로는 안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가 잃어버린 과거의 도덕적 정체성에 대한 처형과 다름없었다. IMDb의 한 관객은 리뷰를 통해 "이 대사가 나오는 순간,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유가 영광의 회복이 아니라 잃어버린 영혼의 조각을 찾기 위함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20년에 걸친 오디세우스의 표류는 트로이 전쟁이라는 비극을 거치며 타락한 자기 자신을 씻어내는 정화의 과정이다. 하데스의 음지(Land of the Dead)에서 자신이 사지로 몰아넣었던 전우 시논의 환영과 아가멤논의 영혼을 만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정점이다. 

 

그는 과거의 찬란했던 군주나 지략가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가 되어야 할 사람은 자신의 죄를 직시하고 책임을 지는 겸손한 인간이다. 비평가들은 이 대목을 두고 "놀란의 비선형적 구성이 오디세우스의 도덕적 성장과 맞물려 강력한 감정적 울림을 준다"고 극찬했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그리고 태양신의 소를 도살한 대가로 전우들을 모두 잃고 홀로 남겨진 오디세우스에게 고통은 더 이상 피해야 할 시련이 아닌,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유일한 속죄의 방식이 된다. 비평가들은 놀란 감독이 거친 바다와 신화적 괴물들을 단지 스펙터클로 소비하지 않고, 주인공의 심리적 죄책감이 물질화된 상징으로 다루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관객 리뷰에서도 "괴물들과의 사투가 액션이 아닌 오디세우스의 비명처럼 느껴졌다"는 호평이 줄을 이었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의 신성한 모든 것을 짓밟았다 (We violated all that's ever sacred between people)."

 

이카타로 돌아온 오디세우스가 변장한 채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에게 고백하는 이 대사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집대성한다. 환대(Xenia)의 법도를 어기고 트로이를 짓밟았으며, 신전을 더럽히고 인간적인 신뢰를 저버린 장본인이 바로 자신들이었음을 자백하는 대목이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곧 청동기 문명의 붕괴를 가져온 악행의 당사자였음을 인정한다. 이 장면에서 맷 데이먼의 절제된 연기는 비평가들로부터 "그의 커리어에 남을 명연기"라는 찬사를 받았다.

 

“어둠에 휩싸인 세상에 새벽이 밝아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실수는 다시 한번 잊혀질 것이다(And dawn will break over the darkened world. And our mistakes will once again be forgotten).”

 

영화의 후반부, 구혼자들을 처단하고 이타카의 왕좌를 가문과 신들에게 돌려준 뒤 오디세우스는 왕관을 내려놓는다. 승리자로서의 오만이 아닌, 신들의 거대한 운명 앞에 서 있는 인간의 철저한 나약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타카의 왕좌를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에게 넘기고 페넬로페(앤 해서웨이)와 함께 "죽은 부하들이 있는 미지의 서쪽으로" 스스로 유배의 길을 택한다.

 

놀란 감독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루블료프》와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듯, 그리스 신화를 낭만적 판타지가 아닌 지극히 가혹하고 사실적인 역사적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레이 하리하우젠의 고전적 특수효과에 대한 오마주를 현대적인 기술력과 실물 촬영(On-location)으로 녹여내어, 모로코, 그리스, 아이슬란드 등의 장엄한 풍광 속에 인간의 고독을 대조시켰다.

 

물론 원작의 세부 요소나 거대한 영웅 서사를 기대했던 일부 관객들에게는 각색에 대한 아쉬움도 남겼다. 한 관객 리뷰는 "원작의 통쾌한 복수극을 기대했다면 다소 침울하고 비통한 톤에 당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호메로스의 신화를 단순 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21세기 관객들에게 전쟁과 죄의식, 그리고 속죄라는 불변의 메시지를 던진 놀란의 대담한 승리"라고 평가했다.

 

영화의 마지막, 서쪽 바다로 배를 저어 나가는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뒷모습 위로 흐르는 침묵은 강렬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오류가 세월의 흐름 속에 잊히기를, 그리고 피로 물든 문명이 다시 새로워지기를 희망한다. 놀란의 《오디세이》는 영웅의 위대한 승전가가 아니다. 그것은 오만했던 인간이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고, 잃어버린 신성함을 찾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는 참회의 대서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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