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제국의 신성한 권력 지배 전략… 정치와 종교의 위험한 야합을 해부하다

신정희 기자

등록 2026-08-08 15:31

이 책은 정치와 종교가 결탁했을 때 벌어지는 민주주의의 후퇴, 인권의 침해, 전쟁의 정당화라는 비극을 경고하며 독자들에게 준엄한 질문을 던진다


정치와 종교의 은밀하고도 치명적인 손잡기 속에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공적 무대에 뛰어든 종교는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고 지배 전략을 설계하는 핵심 도구로 전락했다. 최근 출간된 정태식 교수의 『21세기 제국의 정치와 종교』(한울아카데미)는 미국, 러시아, 중국이라는 21세기 3대 제국이 어떻게 종교를 활용해 대중을 동원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며 국제 질서에 도전하는지 역사사회학적 관점에서 날카롭게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종교 없는 정치도, 정치 없는 종교도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한다. 근대 사회의 대전제였던 '정교분리' 원칙이 무너진 자리를 절대 권력에 대한 욕망과 몰지각한 신앙의 결합이 채우고 있다는 진단이다.


■ 미국, 푸틴, 시진핑… 3대 제국의 '신성한 패권 전략'


책은 21세기를 움직이는 3대 제국의 사례를 통해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가져오는 파괴적 결과를 구체적 역사 맥락 속에서 증명해 낸다.


도널드 트럼프와 '미국 백인 기독교 국가주의' 


2024년 대선을 거쳐 백악관에 재입성한 도널드 트럼프의 정치적 성공 뒤에는 '미국 백인 기독교 국가주의'라는 강력한 이념적 동맹이 존재한다. 트럼프는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느끼는 경제적 박탈감, 인종적·성적 우월감의 상실, 외국인 혐오 및 이슬람에 대한 공포를 자극해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다. 저자는 백인 우월주의와 결합한 기독교 우익 세력이 미국의 종교·이민·인권 정책을 어떻게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지 분석한다. 특히 2021년 1월 미국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 등에 가담한 복음주의 근본주의 세력의 폭력성을 조명하며, 정치가 종교적 선동을 만났을 때 법치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후퇴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 세계'와 정교회의 성전(聖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단지 영토 확장을 위한 정치적 결정에 그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러시아 정교회와의 깊은 공생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소련 몰락으로 상실한 지정학적 영토를 회복하려는 푸틴의 야망과, 교회법적 관할권을 확대하려는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러시아 세계(루스키 미르)' 프로젝트가 작동했다. 키릴 총대주교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영적 안보'를 지키기 위한 '성전'으로 정당화했다. 세속 권력의 침략 전쟁에 신성함을 부여하는 이 같은 야합은 정교 결합이 초래하는 전형적 비극이다.


시진핑의 '종교 중국화'와 국가 부흥의 중국몽 


중국 공산당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중국몽)'을 달성하기 위해 '종교 중국화'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종교를 국가의 통제 아래 두는 수준을 넘어, 불교·도교·이슬람교·개신교·천주교 등 모든 종교의 교리와 의례, 사고 논리까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체제에 맞게 재해석하고 개조하려는 시도다. 종교가 가진 고유의 목적론과 윤리를 국가 이데올로기에 종속시킴으로써 독재 권력의 정당성을 다지고 국가적 단일성을 강제하는 세련된 형태의 종교 전체주의다.


■ 정치의 절대화, 종교의 상대화… "보편 종교가 주술로 전락"


저자는 이들 제국의 사례에서 '정치의 절대화'와 '종교의 상대화'라는 공통된 위험성을 발견한다.


본래 정치는 타협과 조정을 본질로 삼아야 하지만, 종교적 신념과 결합하면서 스스로를 '절대 선'으로 규정하고 상대를 '악마화'한다. 타협 대신 상대를 소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정치는 전쟁과 폭력을 성전으로 포장한다. 반면 절대적 가치와 보편적 사랑을 지향해야 할 종교는 국가적 이익이나 특정 정치 세력의 사적 이익을 봉사하는 도구로 전락하면서 상대화된다. 저자는 이를 두고 "보편 종교가 세속 세계와의 내재적 긴장 관계를 포기하고, 특정 집단의 결속만을 노리는 개별주의적 '주술'로 퇴행했다"고 일침을 가한다.


이러한 정치와 종교의 위험한 동행은 비단 강대국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 역시 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한국 정치권에서는 주요 정당들과 정치인들이 표를 얻고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통일교, 신천지 등 사회적 논란이 거센 사이비·이단 종교 단체들과 음밀히 결탁하는 양상이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교세 동원과 정치적 거래는 정당 정치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공공의 의사결정을 왜곡하는 심각한 폐해를 낳는다. 종교 집단은 정치적 보호막을 얻어 세력을 확장하고, 정치권은 밀실 거래를 통해 왜곡된 표심을 확보하려는 구조 속에서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공공성은 실종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야합이 수사적 동맹을 넘어 실제 물리적 폭력과 사회적 분열로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와 2025년 1월 19일 발생한 서울서부지방법원 점거 난동 사건이 대표적이다. 특히 법원 난동 사건의 주축에 보수 교회에 속한 청년층이 대거 가담했던 사실은, 극단적 종교 신념이 정치적 맹신과 결합했을 때 우리 사회를 얼마나 손쉽게 법치 파괴와 파시즘적 폭력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배척하고 오직 자기 집단의 결속과 상대방의 멸절만을 부르짖는 광신적 정치-종교 야합이 이미 한국 사회의 턱밑까지 다가와 있는 셈이다.


■ 21세기 세계와 한국을 읽는 필수 안내서


저자 정태식 교수는 뉴스쿨 정치사회과학대학원에서 사회이론과 정치·종교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종교사회학회 학술지 ≪종교와 사회≫ 초대 편집위원장을 지낸 학자다. 막스 베버의 전통을 잇는 역사사회학적 관점으로 무장한 저자는 깊이 있는 통찰을 통해 종교와 정치의 복잡다단한 얽힘을 명쾌하게 해부한다.


이 책은 단순히 세 강대국의 정치적 동향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치와 종교가 결탁했을 때 벌어지는 민주주의의 후퇴, 인권의 침해, 전쟁의 정당화라는 비극을 경고하며 독자들에게 준엄한 질문을 던진다. 끊임없이 변동하는 국제 정세의 물줄기를 읽고자 하는 독자들은 물론, 극단적 진영 논리와 종교적 맹신으로 흔들리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21세기 제국의 정치와 종교』는 시대의 통찰을 제공하는 귀중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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