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역사적 광풍은 언제나 개인의 삶을 참혹하게 짓밟고 지나간다. 20세기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남긴 문화대혁명(1966~1976)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 시기 이념의 광기는 수많은 가정을 해체했고, 인간 대 인간의 가장 기본적 신뢰인 가족 간의 유대마저 붕괴시켰다.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2014년 작 '5일의 마중(원제: 归来, Coming Home)'은 바로 이 비극적 시대가 한 가정에 남긴 깊은 흉터를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해 낸 작품이다. 2014년 제67회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 특별 상영작으로 초청되었고, 이듬해 제34회 홍콩영화금상장에서 '최우수 양안삼지 화어영화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엄가령(嚴歌苓, 옌거링)의 소설 '육범언식(陸犯焉識)'의 결말부를 쩌우징즈(鄒靜之)가 각색한 이 영화는 정치적 구호나 시대적 격변 그 자체를 직설적으로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역사적 폭력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한 가족의 고통과 일상, 그리고 결코 메워지지 않는 심리적 상흔을 묵묵히 조명한다. 거대한 국가적 서사 뒤에 숨겨진 개인의 트라우마를 이토록 정갈하면서도 밀도 높게 그려낸 영화는 드물다.
영화의 서사는 1970년대 초, 문화대혁명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던 시기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농장 노동교화소로 끌려간 남편 루옌스(陸焉識, 천다오밍 분)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이송 도중 탈출을 감행해 아내 펑완위(馮婉瑜, 궁리 분)와 딸 丹丹(단단, 장후이원 분)을 찾아온다. 그러나 발레 '홍색낭자군(紅色娘子軍)'의 주연 자리를 열망하며 혁명적 열의에 사로잡혀 있던 딸 단단은 아버지의 탈출 사실을 당국에 알린다. 이 한 번의 밀고는 가족의 운명을 영원히 뒤흔든다.
기차역에서 눈앞에 남편을 두고도 다시 붙잡혀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펑완위의 충격, 그리고 아버지를 팔아넘겼음에도 결국 주연 자리를 얻지 못한 단단의 상실감은 이 가족이 짊어져야 할 평생의 십자가가 된다. 이 장면은 문화대혁명이 단지 정적을 제거하는 정치적 사건에 그치지 않고, 인륜과 가족의 유대를 근본적으로 파괴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루옌스는 마침내 복권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통곡의 벽이다. 아내 펑완위는 심인성 기억장애를 앓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녀의 기억은 루옌스가 돌아오기로 약속했던 '5일'에 멈춰 서 있다. 매달 5일이 되면 그녀는 남편을 마중 나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지만, 정작 바로 곁에서 자신을 돌보는 진짜 루옌스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러한 펑완위의 기억장애는 단순한 의학적 질환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를 관통하며 겪어야 했던 극심한 고통과 공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아를 닫아버린 심리적 방어기제다.
기억의 불능은 역설적으로 그가 겪은 트라우마의 깊이를 증명한다. 루옌스는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편지를 읽어주고, 옛 피아노 곡을 연주하며, 심지어 편지를 전달하는 우체부 시늉까지 낸다. 하지만 펑완위에게 루옌스는 영원히 '가까이 있지만 다가갈 수 없는 타인'으로 남아있다.
해외 주요 매체는 이 작품이 지닌 절제의 미학과 은유적 깊이에 주목했다. 로저 이버트 닷컴(RogerEbert.com)의 피터 소브친스키(Peter Sobczynski)는 이 영화에 별 4개 만점에 3.5개를 부여하며, 장이머우 감독이 '연인', '황후화' 등 대형 스펙터클 영화들이 이어지던 부진기를 딛고 오랜만에 본연의 기량을 되찾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초반부 기차역 장면이 인물 관계를 압축적으로 그려내며 숨 막히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고 언급했다.
칸영화제 현지 취재에서도 이 작품은 화려한 볼거리 대신 한 가정의 제한된 세계에 집중함으로써, 대규모 시대극을 거쳐온 장이머우 감독이 다시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궁리와 장후이원 두 배우에게 인생 배역을 안겨준 작품이라는 평가도 이어졌다.
일반 관객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레터박스(Letterboxd) 등 관객 리뷰 플랫폼에서는 이 영화가 화려한 스펙터클 없이도 절제된 연출만으로 사랑의 지속력을 그려낸 보기 드문 작품이라는 호평이 다수 발견된다. 특히 기억을 잃은 노년의 아내 곁을 지키는 마지막 장면이 관객들의 마음을 무너뜨린다는 반응이 많았다.
영화에서 딸 단단의 변화 또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아버지를 밀고했던 어린 소녀는 세월이 흘러 공장의 노동자로 전락하고, 자신의 죄책감 속에 살아간다. 루옌스는 돌아온 후 딸을 원망하기보다 그녀의 상처를 보듬고 아내와의 화해를 도모한다. 단단 역시 어머니 곁에서 속죄의 삶을 살아가며 파괴된 가족의 조각을 맞추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제시하는 치유는 통속적인 드라마처럼 완벽한 회복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펑완위의 기억은 끝내 돌아오지 않으며, 루옌스는 아내의 '남편'이 아닌 '기다림의 동반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인다. 눈 내리는 기차역에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 옆에 서서 함께 자신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루옌스의 마지막 모습은 숙연함과 동시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장이머우 감독은 초기작 '붉은 수수밭', '홍등' 등에서 강렬한 원색의 색채 대비와 폭발적인 에너지로 중국의 역사와 가부장제를 비판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영웅', '연인' 등 대형 상업 블록버스터를 거친 그가 '5일의 마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카메라 스타일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영화는 지극히 억제된 색조와 정적인 카메라 워크를 유지한다. 화려한 볼거리 대신 인물의 절박한 눈빛과 미세한 떨림, 빗소리와 피아노 선율 같은 소리들에 집중한다. 루옌스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에 끌려 다가오지만 끝내 그가 루옌스임을 깨닫지 못하는 펑완위의 장면은, 절제된 연출이 어떻게 거대한 감정적 파고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이러한 침묵과 절제는 역사적 상처를 마주하는 감독의 경건한 태도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궁리와 천다오밍의 여덟 번째 협업작이자, 천다오밍에게는 장이머우 감독과의 세 번째 인연이었다(첫 협업은 1984년 촬영감독으로 참여한 '하나와 여덟', 두 번째는 2002년 '영웅'). 111분의 상영시간 동안 두 배우는 화려한 대사 없이도 표정과 몸짓만으로 수십 년의 세월과 상실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5일의 마중'은 단순한 과거의 복기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광기가 지나간 후에도 여전히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위령가이다. 문화대혁명은 공식적으로 끝났지만, 펑완위와 루옌스에게 있어 그 비극은 결코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다. 파괴된 가족은 완전히 복원되지 못했고, 빼앗긴 세월은 되돌릴 수 없으며, 트라우마는 영혼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영화는 절망만을 말하지 않는다. 기억을 잃은 아내 곁에서 끊임없이 낯선 이로 머물면서도 그녀의 기다림을 함께해 주는 루옌스의 묵묵한 사랑은, 역사라는 거대한 폭력도 인간의 존엄과 사랑까지 완전히 말살할 수는 없었음을 보여준다.
매달 5일, 눈발이 날리는 기차역에서 기약을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함께 기다리는 두 사람의 엔딩 장면은 하염없이 내리는 눈처럼 슬프고 시리다.
uappl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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