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꼭대기에서 발견한 ‘여덟 번째 대륙’…대만 생태학자가 전하는 수관층의 비밀

신정희 기자

등록 2026-06-29 08:56

로프 한 줄에 의지해 개척한 '수직의 영토'

미시와 거시를 넘나드는 숲 생태계의 순환 구조


거대한 숲의 지붕, 지상에서 수십 미터 높이에 달하는 나무 꼭대기층을 일컫는 '수관층(Canopy)'. 풍부한 햇빛과 독특한 미생물 생태계를 품고 있어 '지구의 여덟 번째 대륙'이라 불리지만, 전문적인 등반 기술과 막대한 예산이 필요해 전 세계적으로 이를 연구하는 학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신간 『나무 꼭대기를 여행하다』(란융샹 저, 강영희 역, 사계절)는 세계에 몇 안 되는 수관층 생태학자가 지난 20년간 대만과 미국의 원시림을 누비며 거목들과 교감한 역동적인 모험이자 문학적인 연구 기록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대만 문학상 금전장 본상과 신인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학술적 가치와 문학적 미학을 모두 인정받았다.


본래 생화학자를 꿈꾸던 저자는 대학 시절 우연히 5미터 높이의 나무에 올랐다가 세상이 입체로 솟아오르는 듯한 경이로움을 느낀 후 수목 등반의 세계에 투신했다. 연구를 위해 나무에 오르는 보통의 학자들과 달리, "나무에 오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며 거꾸로 연구자의 길을 선택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책은 저자가 직접 오른 일곱 그루의 거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대만편백나무에서 시작해, 매달 24그루를 오르내리며 석사 논문을 바친 대만가문비나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비행기 자재로 쓰인 비극적인 역사를 지닌 미국의 시트카가문비나무, 그리고 북미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자이언트세쿼이아를 거쳐 다시 대만삼나무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저자는 로프에 매달린 채 수십 미터 아래의 아찔한 숲 바닥을 내려다보고, 나무 꼭대기에 걸터앉아 안개가 피어오르는 장쾌한 시야를 마주한다. 어스름한 저녁 나무에서 내려오며 반딧불이의 빛무리 속으로 잠겨드는 몽환적인 순간 등 수관층 연구자만이 포착할 수 있는 독창적인 감각들이 지면을 가득 채운다.


책은 단순한 모험기에 그치지 않고, 기후 위기 시대에 숲의 건강성을 진단하는 날카로운 학술적 시선을 유지한다. 저자의 시야는 나무껍질에 붙어 사는 이끼와 지의류의 미시적 세계에서 출발해, 숲 전체의 생태계를 뒤흔드는 산림 병해와 거대한 산불이라는 거시적 담론으로 확장된다.


특히 병원균과 곤충의 침입에 맞서는 나무의 자기방어 전략, 그리고 결국 맞이하게 되는 죽음 이후의 순환 과정을 깊이 있게 다룬다. 치명적인 산림 병해로 개솔송나무가 죽어간 자리에 더 많은 햇빛이 유입되면서 다른 생물들이 생장을 시작하는 숲의 '천이(遷移)' 과정, 죽은 나무를 분해해 다음 세대의 자양분으로 환원하는 균류의 활약 등은 한 생명의 소멸이 어떻게 다른 생명의 생성으로 이어지는지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스스로를 '낭만적인 생태학자'라 부른다. 통제된 실험실을 벗어나 예측 불가능한 야외 현장에서 자연과 온몸으로 부딪치며,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어떻게 한 인간의 세계를 확장하는지 증명해낸다.


세계 곳곳의 숲을 누비며 시야를 넓힌 저자는 독자들에게 나지막한 질문을 던진다.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자연과 세계의 낯선 구석을 연결해 줄 '지극히 친밀한 존재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바닥에서 올려다보는 나무가 아닌, 나무의 시선으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게 만드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상승과 하강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며, 익숙했던 주변의 나무들을 전혀 다른 다채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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