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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대지가 다시 꿈틀거린다. 미·이란 전쟁의 화염이 채 꺼지기도 전에, 중동의 거인 튀르키예가 던진 하나의 거대한 인프라 구상이 지역 지정학의 판도를 통째로 뒤흔들고 있다. 이름하여 ‘현대판 헤자즈 철도 프로젝트’. 유럽연합(EU) 국경에서 출발해 시리아,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호르무즈 해협의 초입인 오만 소하르까지 연결하겠다는 이 초국경 철도망 구상은 단순한 물류 네트워크의 복원이 아니다. 이는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튀르키예의 전략적 야심과, 가자 전쟁 이후 중동 내 종파적·경제적 주도권을 쥐려는 수니파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21세기형 지경학(Geoeconomics)의 결정판이다.
동시에 이 프로젝트는 중동 내 유일한 외톨이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에 실존적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이스라엘이 즉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향해 “이 철도를 막아달라”며 전방위적 로비에 착수한 것은, 이 철도망이 완공되는 순간 자신들이 수년간 공들여온 중동 외교·경제 전략이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레반트 지역에서 걸프만, 그리고 호르무즈에 이르는 이 거대한 철로가 함의하는 바를 심층 분석한다.
헤자즈 철도의 역사적 기원과 21세기적 부활
헤자즈 철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20여 년 전 오스만 제국의 황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00년대 초,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압둘 하미드 2세는 제국의 분열을 막고 이슬람 세계의 수장(칼리프)으로서의 권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대규모 철도 건설을 추진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에서 출발해 시리아 다마스쿠스, 요르단 암만을 거쳐 이슬람의 최고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잇는 노선이었다.
당시 이 철도의 목적은 명확했다. 첫째는 이슬람교도들의 성지순례(하주)를 용이하게 하여 제국 내 무슬림의 결속력을 다지는 종교적·정치적 목적이었고, 둘째는 아랍반도 깊숙한 곳까지 군대를 신속하게 이동시켜 영토를 방어하려는 군사적 목적이었다. 비록 영국의 방해와 1차 세계대전의 발발, 그리고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알려진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가 이끈 아랍 반란군의 철로 파괴 공작 등으로 인해 다마스쿠스~메디나 구간(약 1300km)만 완공된 채 이스탄불~메카 전 구간 개통은 불발됐지만, 이 철도는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불꽃이자 중동 통합의 상징으로 역사에 남았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이 낡은 철로의 기억을 다시 소환했다. 단순한 역사적 복원이 아니다. 튀르키예가 제시한 청사진은 과거 오스만 제국의 판도를 훌쩍 뛰어넘는다. 불가리아 국경(EU의 관문)에서 시작해 이스탄불, 다마스쿠스, 암만을 지나 사우디의 메디나·메카를 거친 뒤, 걸프만을 우회해 오만의 소하르 항구까지 이르는 초거대 노선이다.
이 프로젝트가 최근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지난 4월 튀르키예, 시리아, 요르단 3개국의 교통장관이 요르단의 옛 헤자즈 철도역사에서 만나 구체적인 복원 및 연결 사업을 논의한 데 이어, 이달 초에는 튀르키예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철도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가자 전쟁과 미·이란 전쟁으로 중동의 기존 질서가 해체되는 틈을 타, 튀르키예와 수니파 맹주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튀르키예와 수니파 블록의 전략적 셈법
현대판 헤자즈 철도는 참여하는 국가마다 각자의 명확한 전략적 이익을 제공한다. 이들이 종파적, 정치적 앙금을 뒤로하고 철로 위에서 손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튀르키예: ‘신오스만주의’의 완성무대와 물류 허브화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외교 노선은 이른바 ‘신오스만주의(Neo-Ottomanism)’로 요약된다. 과거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튀르키예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야심이다. 헤자즈 철도는 이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완벽한 도구다.
튀르키예는 이 철도를 통해 유럽과 중동, 걸프 지역을 잇는 독점적 물류 허브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특히 EU 가입국인 불가리아 국경을 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은 튀르키예가 유럽의 제조 물량을 중동 시장으로 공급하는 거대한 파이프라인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뜻이다. 가자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대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아랍 대중의 지지를 확보한 에르도안은, 이제 인프라라는 하드웨어를 통해 아랍 정부들과의 실질적인 결속을 다지려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비전 2030’의 다변화와 지정학적 우회로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비전 2030’을 통해 석유 의존형 경제 구조에서 탈피해 글로벌 물류 및 관광 허브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헤자즈 철도는 사우디의 핵심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의 접근성을 극대화하여 연간 수천만 명에 달하는 성지 순례객을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지정학적 안전판 확보라는 측면이다.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은 오랜 기간 호르무즈 해협의 안보 불안에 시달려왔다. 이란이 해협을 봉쇄할 때마다 원유 수입과 물류가 마비되는 취약성을 안고 있었다. 헤자즈 철도가 오만 소하르까지 연결되면, 걸프 국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도 육로를 통해 레반트 지역과 유럽으로 물자를 직송할 수 있는 강력한 우회로를 갖게 된다.
시리아와 요르단: 고립 탈피와 경제적 회생
수년간의 내전으로 피폐해진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 이 철도는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고 재건 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생명줄이다. 요르단 역시 고질적인 경제난 속에서 통행세 수입과 물류 활성화를 통해 경제적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수니파라는 종교적 유대감 아래, 경제적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스라엘의 고립 공포와 하이파 항구의 위기
이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이스라엘의 시선은 공포 그 자체다. 이스라엘이 미국 공화당 의원실에 이메일을 폭탄 접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개입을 요청한 이유는, 헤자즈 철도가 이스라엘의 생존 전략을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구도에서 보듯, 현대판 헤자즈 철도는 이스라엘을 완전히 배제(Bypassing)한다. 이스라엘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하이파 항구의 전략적 가치 폭락
이스라엘은 지중해 연안의 하이파 항구를 중동과 유럽을 잇는 거점 항만으로 키우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진행해왔다. 중국 자본을 유치해 신항만을 건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구상은 걸프 지역의 물류가 육로를 통해 요르단을 거쳐 하이파 항구로 들어온 뒤, 여기서 배를 타고 유럽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헤자즈 철도가 완공되면 걸프와 사우디의 물류는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꺾이지 않고, 그대로 북상해 시리아와 튀르키예를 거쳐 유럽 육로로 직행하게 된다. 하이파 항구는 졸지에 ‘동네 항구’로 전락할 위험에 처한다.
둘째, IMEC 구상의 무력화
미국 바이든 행정부 시절 선언되었고 트럼프 행정부 역시 거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주목해온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 구상이 뿌리째 흔들린다. IMEC는 인도에서 출발해 UAE, 사우디, 요르단, 이스라엘을 거쳐 유럽으로 가는 루트다. 그러나 사우디와 요르단이 튀르키예 중심의 헤자즈 철도로 선회할 경우, IMEC에서 이스라엘이 차지하는 고리 모양의 허브 역할은 사라진다. 이스라엘 측이 미국 정치권에 보낸 이메일에서 “IMEC 구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미국의 자존심과 대중국 견제 전략을 자극하려는 고도의 포석이다.
셋째, ‘아브라함 협정’의 동력 상실
이스라엘 우파 정부의 최대 외교 치적은 UAE, 바레인, 모로코 등과 맺은 ‘아브라함 협정(관계정상화)’이었다. 네타냐후는 이를 사우디까지 확장해 아랍 세계 전체와 손을 잡고 이란을 고립시키려 했다. 그러나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자행한 군사 행동과 미·이란 전쟁의 여파로 아랍 여론은 악화되었고,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정상화 카드를 뒤로 미룬 채 튀르키예와의 실리 노선을 택했다. 헤자즈 철도로 수니파 국가들이 끈끈한 경제 동맹을 형성하면, 이스라엘이 파고들 틈새는 사라진다. 이스라엘로서는 아브라함 협정의 판 자체가 깨지는 악몽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결국 공은 다시 워싱턴으로 넘어갔다. 네타냐후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와 ‘아브라함 협정 중시’ 성향을 공략하고 있다. 이스라엘 측의 논리는 명확하다. 튀르키예의 헤자즈 철도는 미국이 주도한 아브라함 협정 체제를 위협하는 ‘적대적 프로젝트’이며, 나아가 나토(NATO) 회원국이면서도 독자 노선을 걷는 에르도안의 튀르키예에 중동의 패권을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 헤자즈 철도를 적극적으로 막아설지는 미지수다. 여기에는 몇 가지 걸림돌이 존재한다.
실리주의와 인프라 투자: 트럼프는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한다. 사우디와 튀르키예가 자국 자본으로 대규모 철도를 건설하겠다는데, 미국이 이를 직접적으로 제재할 명분이 약하다. 오히려 미국 기업들의 철도 기자재 수출이나 건설 참여 기회로 활용하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트럼프는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매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사우디의 핵심 경제 사업인 비전 2030의 일환인 철도 프로젝트를 미국이 정면으로 가로막는 것은 사우디와의 관계 균열을 의미한다.
튀르키예의 레버리지: 에르도안은 트럼프와의 직접 협상에 능한 인물이다. 튀르키예가 이 철도를 통해 러시아나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겠다는 논리를 들고나올 경우, 트럼프는 이를 용인할 수도 있다.
결국 미국은 이스라엘의 요청을 받아들여 튀르키예를 압박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막후에서는 사우디를 IMEC 체제에 묶어두기 위한 또 다른 당근을 제시하는 ‘투트랙’ 전략을 취할 확률이 높다.
철로가 바꿀 중동의 미래 지형도
헤자즈 철도 프로젝트의 부활은 중동 정치가 과거의 ‘이념과 종파’ 중심에서 ‘지경학과 인프라’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자 전쟁으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의 감정적 골은 깊어졌지만, 아랍 국가들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거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만약 현대판 헤자즈 철도가 예정대로 추진되어 불가리아에서 오만까지 연결된다면, 중동은 튀르키예-레반트-걸프를 잇는 거대한 수니파 경제 벨트를 완성하게 된다. 이 벨트 안에서 물자와 자본이 자유롭게 흐를 때, 그 흐름에서 철저히 소외된 이스라엘은 섬처럼 고립될 수밖에 없다. 하이파 항구는 도태되고, 지중해의 관문으로서의 이스라엘이 가진 매력은 반감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미국에 매달려 이 철도를 막으려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중동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자신들이 영원히 ‘이방인’으로 남을지 모른다는 실존적 위기감의 표출이다. 120년 전 오스만 술탄이 깔았던 철로는 제국의 멸망과 함께 멈췄지만, 2026년 현재 부활한 철로는 중동의 권력 지도를 완전히 새로 쓰기 위해 궤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워싱턴과 텔아비브, 앙카라와 리야드가 벌이는 이 치열한 ‘철도 전쟁’의 승자가 누가 될지에 따라, 향후 수십 년간의 중동 질서가 결정될 것이다.
** 주요 구간별 지정학적 특징
유럽-튀르키예 구간 (불가리아 국경 ~ 이스탄불): EU 가입국인 불가리아의 국경을 시발점으로 삼아 유럽의 물류가 중동으로 직행할 수 있는 인프라 기반을 제공한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끼고 서구와 아시아를 잇는 독점적 물류 허브 역할을 수행한다.
레반트 구간 (다마스쿠스 ~ 암만): 과거 오스만 제국 시절 구축됐던 옛 헤자즈 철도의 핵심 복원 구간이다. 시리아와 요르단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종파적·정치적 갈등으로 단절됐던 레반트 지역의 경제망을 복원하는 핵심 축이다.
사우디 성지 구간 (메디나 ~ 메카):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종교 성지들을 연결한다. 연간 수천만 명에 달하는 무슬림 성지 순례객(하주) 수송을 담당하여 사우디 '비전 2030'의 관광·종교 인프라 확충에 기여한다.
걸프-오만 구간 (메카 ~ 오만 소하르): 아라비아반도 내륙을 가로질러 걸프만 남단의 오만 소하르 항구까지 이어진다. 이란의 위협이 상존하는 호르무즈 해협 내부를 거치지 않고, 해협 바깥의 오만만으로 물자를 곧바로 빼낼 수 있는 전략적 우회로를 완성하는 종착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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