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유를 대체하고 우주 개척이 일상이 된 오늘날에도, 인류는 여전히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보이지 않는 식인(食人)의 현장을 목격한다. 자본의 극단적 논리에 매몰된 인간 소외, 타인의 고통을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소비하는 구경꾼의 시선, 부조리한 구조를 혁파하기보다 안주하려는 현대적 노예 근성까지. 100여 년 전 루쉰(魯迅, 1881~1936)이 중국 사회의 골수에서 도려내고자 했던 고질병들은 오늘날 형태만 바꾼 채 전 지구적 현대인의 내면 속에 교묘히 잠복해 있다.
루쉰은 단순히 ‘중국 현대 문학의 아버지’라는 박제된 수식어나 교과서 속 인물에 갇힐 존재가 아니다. 그는 시대의 모든 부조리와 절망에 온몸으로 항거했던 ‘영원한 반항인’이었으며, 자신을 포함한 기성세대를 새 시대의 거름으로 규정했던 ‘중간물(中間物)’이었다. 대개의 사상가와 혁명가들이 스스로를 광명을 인도하는 구원자로 포장할 때, 루쉰은 스스로를 ‘어둠과 함께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하며 자신에게 먼저 메스를 들이댔다.
세계관이 고착되기 쉬운 쉰의 나이에도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을 학습하며 어제의 자신과 결별했던 그의 변증법적 사유는 교조주의에 빠진 현대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본 칼럼에서는 루쉰의 생애와 문학, 그리고 그가 남긴 날카로운 잡문(雜文)과 육성을 통해, 그가 절망의 극단에서 어떻게 희망의 길을 내고자 했는지 그 사상적 궤적을 1만 자의 깊이로 추적한다.
◇봉건의 밤을 깨우는 외침: 식인의 역사와 유교 이데올로기의 해체
루쉰 사상의 출발점은 철저한 폭로와 해체에 있다. 1918년 잡지 《신청년》에 발표된 그의 첫 백화문 소설 〈광인일기(狂人日記)〉는 중국 문학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사상사 전체를 뒤흔든 일대 사건이었다. 루쉰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광인(狂인)’의 입을 빌려 4,000년 동안 이어진 중국의 유구한 역사를 단 한 마디로 정의했다. 바로 ‘식인(食人)’이다.
"역사책의 행간을 살피니 온통 ‘인의 도덕(仁義 道德)’이라는 글자뿐이었으나, 밤새도록 잠 못 이루고 다시 찬찬히 뜯어보니 글자들 사이로 비치는 것은 오직 ‘식인’이라는 두 글자뿐이었다."
루쉰이 고발한 식인은 야만 사회의 생물학적 인육 섭취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의'와 '효제'라는 허울 좋은 도덕적 명분 아래 개인의 생명력과 자유, 주체성을 억압하고 말살해온 봉건적 유교 시스템에 대한 사상적 고발이다. 질서와 전통이라는 미명 하에 기득권 시스템은 늘 약자의 피를 요구해왔다. 루쉰은 정체된 전통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썩히는지,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들이 어떻게 서로를 잡아먹는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지를 냉철하게 그려냈다.
그는 문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야만을 직시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노예로 부리고 잡아먹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자기 또한 똑같이 노예로 부려지고 먹힐 수 있다는 사실은 망각한다"는 그의 지적은 뼈아프다. 전통에 대한 맹신은 사유의 정지를 낳고, 사유가 정지된 사회는 거대한 인간 도살장이 된다는 경고다.
루쉰은 이 봉건의 무쇠 방을 깨우기 위해 외쳤다. 그의 유명한 '무쇠 방' 비유는 지식인의 책무와 절망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가령 무쇠로 만든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창문 하나 없고 부수기도 몹시 어려운 방 말이야.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다면 머지않아 질식해 죽고 말 걸세. 하지만 잠든 채 죽는 것이니 죽음의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겠지. 그런데 자네가 크게 외쳐 몇 사람을 깨운다면, 그 불행한 몇몇은 임종의 쓰라린 고통을 피하지 못할 터인데, 그러고도 자네는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해 루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워야 한다고 답한다. 몇 사람이라도 깨어난다면 그 무쇠 방을 부술 수 있는 '희망'의 가능성이 단 1%라도 생기기 때문이다. 〈광인일기〉의 마지막 문장인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救救孩子...)"라는 절규는, 이미 식인의 문화에 오염된 기성세대를 넘어 아직 물들지 않은 다음 세대만큼은 이 거대한 도살 시스템에서 탈출시켜야 한다는 루쉰의 간절한 청사진이자 실천적 과제였다.
◇아Q라는 거울: 정신승리법과 노예 근성에 대한 도저한 냉소
루쉰은 민중을 무조건적으로 미화하거나 동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이는 그와 동시대 혹은 후대의 많은 리얼리즘 작가들이 민중을 순결한 피해자로 상정했던 것과 궤를 달리하는 루쉰만의 독보적인 지점이다. 루쉰 문학의 정점이라 불리는 《아Q정전(阿Q正傳)》은 바로 그 민중의 내면에 도사린 나약함과 천박함, 그리고 치졸한 노예 근성을 사정없이 해부한 거울이다.
주인공 아Q의 핵심 생존 전략은 ‘정신승리법’이다. 이는 강자에게 당한 모욕과 패배를 뇌내 망상을 통해 승리로 둔갑시키고, 그 과정에서 쌓인 굴욕과 분노를 자신보다 더 약한 자(비구니나 짜오 마담 등)에게 화풀이함으로써 뒤틀린 자존감을 회복하는 비겁한 메커니즘이다. 동네 건달들에게 두들겨 맞고도 "나는 아들놈에게 맞은 격이다. 요즘 세상은 참 말세야"라며 스스로를 아버지가 된 것처럼 착각해 만족해하는 아Q의 모습은 인간 군상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자기기만을 보여준다.
루쉰은 아Q의 정신승리법이 단지 개인의 결함이 아닌, 당시 신해혁명 전후 중국 민중이 지니고 있던 보편적 병리 현상임을 간파했다.
"나는 중국인에게는 켜켜이 쌓인 원망과 분노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그 분노는 물론 강자의 유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강자에게 맞서지 않고, 도리어 더 약한 자에게 그것을 터뜨린다."
이 잔인한 분석은 루쉰을 '잔혹한 냉소주의자'처럼 보이게 만든다. 실제로 그는 군중의 무지와 이기심, 그리고 타인의 비극을 그저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구경꾼'의 속성을 극도로 혐오했다. 그가 일본 센다이 의학전문학교 유학 시절, 러일전쟁 스파이 혐의로 처형당하는 동포의 모습을 보며 단지 구경꾼으로서 활기차게 환호하던 중국인들의 모습을 환등기 영상으로 목격하고 의학 공부를 때려치운 일화는 유명하다. 육체의 병을 고치는 것보다 정신의 병을 고치는 문학이 더 시급하다는 자각이었다.
하지만 루쉰의 이 차가운 비판과 독설은 역설적으로 민중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에서 우러나온 메스였다. 스스로가 노예임을 깨닫지 못하는 노예만큼 구원하기 불가능한 존재는 없다. 루쉰은 민중이 안일한 노예의 잠에서 깨어나 전사로 거듭나기를 바랐기에 비난을 감수하고 독설이라는 채찍을 들었다. "비굴한 자일수록 주인의 사랑을 더 받는다"며 안주하려는 이들을 흔들었고, "늘 이런 식이었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는 뜻인가?"라며 관습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균열을 냈다. 우리 안의 아Q를 죽여야만 비로소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이 시작된다는 엄중한 선언이다.
◇ ‘중간물’ 사상과 속죄 의식: 어둠과 함께 사라질 잔혹한 성실성
루쉰 사상의 독창성과 위대성을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개념이 바로 ‘중간물(中間物)’ 의식이다. 루쉰은 자신을 역사적 생명의 사슬에서 구시대와 새 시대를 잇는 징검다리로 규정했다. 그는 결코 자신을 새로운 광명 세대의 주역이나 완벽한 존재로 포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포함한 기성세대를 봉건의 악취와 때가 묻은 ‘오염된 존재’로 냉정하게 한계 지었다.
서강대학교 이욱연 교수의 평론처럼, 루쉰은 "나는 어둠과 함께 쓰러질 터이니 청년들이 새로운 세상에 서라"고 말했다. 이는 지독한 죄인의식이자 숭고한 희생정신이다. 대개의 혁명 지도자들이 혁명 이후의 권력을 탐하거나 자신을 역사의 정점에 두려 할 때, 루쉰은 스스로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썩은 흙'으로 여겼다.
"나는 시대의 폐단을 공격한 모든 글은 반드시 그 시대의 폐단과 함께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혈구가 종기를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것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그 생명이 계속 유지된다면, 그것은 곧 병균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자신의 글조차 시대의 병리적 산물이므로, 사회가 건강해지면 자신의 글 역시 폐기되어야 마땅하다는 이 철저한 자기부정은 서늘하기까지 하다. 그는 자신을 역사의 종착지가 아닌 중간 기착지로 보았다. 삶이란 중간물로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다음 세대에게 길을 열어주는 과정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중간물 사상은 그의 산문 〈우리는 지금 어떻게 아버지 노릇을 할 것인가〉에서 구체적인 가족론과 세대론으로 확장된다. 루쉰은 부모가 자식을 소유물로 여겨 보답을 요구하는 전통적 효 관념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자식은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니다. 이미 세상과 나누어진 존재이기에 또한 인류의 한 사람이다. 내 것인 만큼 더욱 교육의 의무를 다해 자립할 능력을 길러주어야 하고, 내 것이 아닌 만큼 해방시켜 모든 것을 그들 자신의 것으로 돌려주어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자녀들을 독립된 주체로 해방시키는 것, 자신은 구시대의 짐을 지고 무덤으로 들어가더라도 아이들에게는 해방된 벌판을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유일한 책무라는 것이다. 권위주의와 세대 갈등이 극에 달한 현대 사회에서, 스스로를 기꺼이 청년들을 위한 '흙'으로 내던지려 했던 루쉰의 중간물 사상은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양심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잡문(雜文)의 미학: 권력과 허위를 꿰뚫는 단검과 투창
루쉰은 위대한 소설가였지만, 그의 삶의 후반기를 전면적으로 지배한 양식은 단편 소설이 아닌 ‘잡문(雜文)’이었다. 격변하는 중국 근대사의 한복판에서, 긴 호흡의 장편 소설을 쓰며 상아탑에 앉아있기에 현실은 너무나 참혹하고 시급했다. 그는 당대의 정치적 폭압, 지식인들의 위선, 문화적 반동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단성적이고 날카로운 짧은 글, 즉 잡문을 전장(戰場)의 무기로 삼았다.
그의 잡문은 문학을 위한 문학이 아니었다. 그것은 군더더기 없는 투창이었고, 핵심만을 골라 찌르는 단검이었다. 그의 문체는 불필요한 수식 없이 명쾌하고 힘이 넘치는 간결체의 극치였다. "펜촉이라면 날카로워야 하며, 꿰뚫을 수도 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말처럼, 그의 글은 언제나 당대 지배층과 위선적 지식인들의 심장을 정확히 겨누었다.
특히 1926년, 친일·매판 성향의 돤치루이 군벌 정부에 항의하던 시위대와 청년 학생 47명이 학살당한 ‘3·18 참사’를 목격한 후 쓴 글들에서 루쉰의 비분강개와 분노는 정점에 달한다. 그는 정부의 폭거를 "민국 이래 가장 어두운 날"로 규정하며 피를 토하듯 썼다.
"먹으로 쓴 거짓은 결코 피로 쓴 사실을 덮을 수 없다. ... 마흔여 명 청년의 피가 사방에 흘러넘쳐 숨조차 막히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내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 이 비인간적인 세상에 나의 더없는 애통을 드러내어 그로써 고통을 위로하고, 이것을 죽은 자들에게 바치는 미약한 제물로 삼아 삼가 영전에 올리리라."
이 사건 이후 루쉰은 군벌 정부의 지명수배를 받아 가혹한 도피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펜을 꺾지 않았다. 대학을 떠나 야인으로서 잡문과 강연을 통해 권력의 폭압에 끊임없이 저항했다.
루쉰의 잡문이 지닌 가장 큰 힘은 그것이 일시동인(一視同仁)의 잣대에 기반했다는 점이다. 그는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우익 군벌과 보수주의자들의 반동 메커니즘을 공격했을 뿐만 아니라, 좌파 내부의 교조주의와 말만 앞세우는 문인들의 위선 역시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편을 가르지 않고 오직 '진실'의 잣대로 세상을 보았기에, 상층 기득권 세력은 좌우를 막론하고 그를 극도로 불편해했다. 반대로 허위와 과장을 혐오하던 당대의 청년들은 그의 정직함과 날카로움에 매료되어 그를 ‘인간 자석’이라 부르며 따랐다. 그의 잡문은 시대를 비추는 가장 예리한 사상적 거울이었다.
◇끊임없는 자기 해부와 변증법적 진보
루쉰은 결코 하나의 사상적 틀에 갇혀 안주하는 고여 있는 물이 되기를 거부했다. 대부분의 지식인과 사상가들이 20~30대에 형성한 세계관에 기대어 평생 세상을 해석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과 달리, 루쉰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상을 검증하고 스스로의 허물을 벗어던지는 진행형의 인간이었다.
그가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을 본격적으로 학습하고 수용한 것은 40대 후반, 쉰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과 세계관에 새로운 사유가 들어왔을 때, 그는 이를 거부하지 않고 치열하게 검증한 뒤 자기 것으로 소화했고, 그 과정에서 낡은 어제의 자신을 미련 없이 버렸다. 이른바 '정반합(正反合)'의 논리에 따라 나선형으로 계속해서 전진하는 변증법적 사고의 전형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비판이 당대와 후대에 강력한 도덕적 권위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칼날이 타인보다 자신에게 먼저, 그리고 더 깊숙이 가닿았기 때문이다.
"분명 나는 자주 남을 해부한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에는 더욱 사정없이 나 자신을 해부한다. 조금만 드러내 보여도 따뜻함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은 곧 냉혹함을 느끼는데, 하물며 내 피와 살을 전부 드러낸다면 그 말로가 어떠할지 나도 알 수 없다."
그는 자신 역시 봉건의 잔재 속에서 태어나 그 악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적 존재임을 늘 자각하고 있었다.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의 내면에 숨은 아Q성과 위선을 먼저 도려내는 도저한 자기 해부의 태도, 그것이 루쉰 문학을 단순한 계몽문학이나 프로레타리아 슬로건 문학으로 전락하지 않게 지켜준 방파제였다. 그는 완벽한 성인(聖人)의 지위를 원치 않았다. 천두슈의 평처럼 그는 "신도 아니고 개도 아닌, 진실한 개인"으로서 끊임없이 사유의 경계를 밀어나간 성실한 단독자였다.
◇절망의 끝에서 길을 내는 희망의 변증법
루쉰의 문학은 흔히 ‘절망적인 항전의 문학’이라 불린다. 그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낙관적인 미래를 약속하거나 위로를 건네는 저렴한 희망을 철저히 경멸했다. 그에게 가짜 희망은 고통을 잠시 잊게 만드는 마약에 불과했다. "희망은 허무한 것이다. 절망이 그러하듯이"라는 그의 짧은 문장은, 희망과 절망을 동등한 무게의 허상으로 바라보는 그의 허무주의적 심연을 드러낸다.
그러나 루쉰은 허무주의에 굴복하여 냉소로 일관하는 패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절망의 가장 깊은 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하고 주체적인 의지로 다시 일어섰다. 가짜 희망을 버린 자리에 비로소 구체적인 행동으로서의 진정한 희망이 싹튼다는 변증법적 도약이다. 소설 〈고향(故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역사적 문장은 희망에 대한 루쉰의 철학을 완벽하게 요약한다.
"희망이라는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도 같다. 본래 땅에는 길이 없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루쉰에게 희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역사의 진보에 따라 자동으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거친 황무지와 가시덤불 속을 온몸으로 밟고 나아가는 구체적인 ‘발걸음’과 ‘실천’의 축적이다. "우리 삶을 구원하는 것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구체적인 행동 하나하나다"라는 그의 확신은, 길이 없는 곳에서 고독하게 첫 발자국을 남기는 투쟁의 요체였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쉼 없이 집요하게 나아가는 정신을 삶의 태도로 삼았다. 사나운 짐승은 언제나 홀로 걷고, 소와 양만이 무리를 지어 몰려다닌다며 고독을 견디는 전사의 자세를 강조했다. 진정한 전사란 인생의 비참함과 흘러내리는 피를 정면으로 직시하면서도, 묵묵히 펜을 들어 땅 위에 한 걸음의 길을 더 내는 자다. 루쉰의 희망은 절망이라는 단단한 무덤을 뚫고 피어난 가장 질긴 꽃이었다.
◇우리 안의 아Q를 죽이고 루쉰의 메스를 깨우다
루쉰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사후 역사는 또 다른 왜곡과 화석화의 과정이었다.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은 루쉰을 "중국 문화혁명의 최고 사령관이자 위대한 사상가, 혁명가"로 추켜세우며 그를 공산주의의 친애하는 전우로 신격화했다. 그의 이미지는 거대한 위인의 동상으로 박제되었고, 문화적 아이콘으로 소비되는 과정에서 정작 복잡하고 치열했던 문인으로서의 내적 모순과 인간적 고뇌는 사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다시 읽고 깨워야 할 루쉰은 붉은 광장에 서 있는 대리석 동상이 아니다. 여전히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피 흘리며 고독하게 싸우고 있는 ‘인간 루쉰’,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예리한 메스다.
그는 100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여전히 현실
과 적당히 타협한 채 거대한 시스템의 노예로 안주하는 ‘안정된 노예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타인의 비극과 고통을 단지 흥미로운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불임(不妊)의 ‘구경꾼’은 아닌가? 권력과 자본이 요구하는 가면을 너무 오래 써서 이제는 무엇이 당신의 진짜 얼굴인지조차 잊어버리지는 않았는가?
루쉰의 글은 아프다. 그의 문장은 독자에게 위로 대신 부끄러움을 주고, 안락한 소파에서 일어나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아픔은 신체를 죽이는 병마의 고통이 아니라, 썩어 문드러진 부위를 도려내어 생명을 살려내는 메스의 필연적인 통증이다.
우리가 지금 다시 루쉰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세상의 거대한 허위와 동조 압력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생각의 자기다움’을 회복하기 위해서이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남들이 닦아놓은 탄탄대로가 아닌 나만의 길을 묵묵히 내딛기 위해서다. 우리는 여전히 구시대의 어둠을 몸에 문지른 채 살아가는 중간물들이며, 동시에 다음 세대를 위해 황무지에 길을 내야 하는 개척자들이다. 루쉰이 남긴 날카로운 펜촉의 온기를 빌려, 우리 삶의 안일함과 무관심을 격렬하게 꿰뚫어야 할 때다.
"진정한 전사는 감히 인생의 비참함을 직시하고, 흘러내리는 피와 맞서 싸운다."
그의 장엄한 외침은 지금도 가시덤불 속을 걷는 모든 고독한 이들의 발밑을 비추는 영원한 등불로 살아 숨 쉬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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