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가의 메스와 대중의 환호, 넷플릭스 ‘원더풀스’가 증명한 K-히어로물의 생존 법칙
©넷플릭스 영어판 포스터
종말론이 전 세계를 집어삼키던 1999년 세기말, 대한민국 해성시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어설픈 초능력자들의 분투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원더풀스’(The WONDERfools)가 베일을 벗은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5월 20일 현재, 글로벌 시청 순위 3위에 올랐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따뜻한 인간미와 치밀한 연출력을 동시에 인정받았던 유인식 감독과 ‘극한직업’의 말맛을 살려낸 허다중 작가, 그리고 크리에이터 강은경 작가의 만남은 시작부터 방송가의 대형 화두였다. 여기에 박은빈, 차은우, 김해숙, 손현주, 최대훈, 임성재, 정이서, 최윤지, 배나라 등 세대를 아우르는 배우들의 라인업은 글로벌 관객들의 눈도장을 찍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축제의 이면에는 K-콘텐츠를 바라보는 국내외 비평가들의 날카롭고 까칠한 시선이 엄연히 존재한다. 할리우드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슈퍼히어로 장르를 한국적 서사와 코미디로 변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익숙한 기시감, 그리고 서사의 엉성함에 대해 평단은 냉정하게 메스를 들이댔다.
반면, 전 세계 안방극장의 시청자들은 이러한 평론가들의 지적을 비웃기라도 하듯 작품이 선사하는 날 것 그대로의 재미와 코믹한 카타르시스에 열광하고 있다. 비평가들의 냉정한 평가와 시청자들의 뜨거운 환호 사이, 그 거대한 간극 속에서 ‘원더풀스’가 거둔 미학적·대중적 성취의 본질은 무엇인지 짚어보았다.
평단의 냉소: “오마주와 복제의 경계, 그리고 파편화된 서사”
글로벌 비평 매체와 로튼 토마토, IMDb의 외부 평론가 리뷰(External Reviews) 란을 가득 채운 국내외 비평가들의 평가는 다분히 회의적이고 날이 서 있다. 이들이 가장 먼저 지적하는 부분은 장르적 참신성의 결여다. 한 서구권 매체의 평론가는 “유인식 감독은 할리우드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문법을 한국식 골목길 정서로 끌고 들어왔지만, 이는 독창적인 로컬라이징이라기보다 기존 영웅물들의 영리한 짜깁기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특히 극 중 박은빈이 연기한 은채니의 시그니처 액션 시퀀스나 차은우가 분한 강로빈의 갈등 구조는 마블 스튜디오의 ‘어벤져스’나 DC의 히어로 서사에서 보았던 수많은 클리셰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장르적 변주를 위해 시도된 ‘비틀기’와 ‘오마주’가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또 다른 비평가는 “세기말 Y2K 감성을 자극하는 연출은 초반의 시선을 붙잡는 데 성공했으나, 주성치식 주성 코미디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외피를 억지로 이어 붙이다 보니 톤앤매너가 춤을 춘다”며 “영화 ‘극한직업’에서 보여준 허다중 작가 특유의 재기발랄한 대사 수위도 초능력이라는 초현실적 설정과 만나는 순간 종종 현실감을 잃고 표류한다”고 분석했다.
영화 '마녀'처럼 아이들 대상의 실험으로 탄생한 것이나 초능력을 가졌으나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의도치 않게 사고를 치고 마는 ‘결함 있는 초능력자들’(Flawed Superhumans)이라는 설정 자체도 비평가들의 까칠한 시선을 피해 가지 못했다. 평단은 완벽하지 않은 영웅들이 주는 신선함이 극 중반을 넘어서며 서사의 추진력을 떨어뜨린다고 보았다.
빌런과의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되어야 할 타이밍에 주인공들의 허당스러운 실수나 코믹한 슬랩스틱이 반복되면서, 장르물로서의 긴장감이 파편화되고 전개가 느슨해진다는 비판이다. 결국 평단에 있어 ‘원더풀스’는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드라마라기보다는, 안전한 흥행 공식을 적당히 버무린 ‘기획형 상품’에 가까웠던 셈이다.
대중의 반격: “뻔해서 더 즐겁다, 모지리 영웅들이 주는 무해한 위로”
하지만 IMDb의 시청자 리뷰(User Reviews) 페이지와 글로벌 OTT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평론가들의 냉정한 평가와는 180도 다르다. 전 세계 시청자들은 평론가들이 ‘클리셰의 답습’이라 지적한 부분을 오히려 ‘대중적 진입장벽을 낮춘 친근한 매력’으로 받아들이며 열광하고 있다. 한 해외 시청자는 “영웅들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고뇌하고 전 세계를 파괴하는 무거운 할리우드식 히어로물에 피로감을 느끼던 차에, 동네 평화를 지키겠다고 아웅다웅하는 ‘원더풀스’의 모지리 4인방은 신선한 해방감을 주었다”며 별점 10점을 부여했다.
시청자 리뷰에서 가장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대목은 바로 ‘예측 불허의 코믹 비틀기’다. 드라마 속 히어로들은 멋지게 하늘을 날아오르려다 전신주에 걸리기 일쑤고, 순간이동을 하지만 엉뚱한 시장통 한복판에 옷이 반쯤 벗겨진 채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연출에 대해 국내의 한 시청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평론가들은 개연성이 없다고 투덜대지만, 히어로 영화의 멋진 포즈를 교묘하게 비틀어 코미디로 승화시킨 장면을 볼 때마다 배를 잡고 웃었다”며 “기존 영웅물의 엄숙주의를 완전히 깨부수는 한국형 코믹 히어로물의 정수”라고 극찬했다.
특히 박은빈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과 차은우의 장르적 성장에 대한 시청자들의 만족도는 최고조에 달해 있다. 전작의 지적인 이미지를 완전히 지워내고 어설픈 초능력자 무리의 선봉에 선 박은빈을 향해 시청자들은 “박은빈은 또 한 번 자신만의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다.
완벽하게 망가지면서도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는 연기는 오직 그녀만이 가능하다”는 찬사를 보냈다. 비주얼적 강점을 넘어 코믹 액션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 차은우에 대해서도 “얼굴 천재가 선사하는 엉뚱한 슬랩스틱 코미디가 이토록 매력적일 줄 몰랐다”는 글로벌 팬들의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평론가들이 들이댄 잣대가 ‘서사의 완벽함’이었다면, 시청자들이 선택한 기준은 ‘지친 일상을 달래줄 무해하고 유쾌한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Y2K 세기말 감성과 K-콘텐츠의 영리한 생존 전략
‘원더풀스’가 글로벌 3위라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또 다른 일등 공신은 바로 1999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주는 시각적·정서적 아날로그 감성이다. 삐삐와 두꺼운 브라운관 TV, 세기말의 종말론 소동 등 Y2K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연출은 국내 3040 세대에게는 짙은 향수를, 해외 MZ세대 시청자들에게는 뉴트로(New-tro) 특유의 신선하고 힙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유인식 감독은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이번에도 기저에 깔아두었다. 초능력을 가졌음에도 사회의 주류가 되지 못하고 변두리에서 소외된 이들이, 결국 서로의 결함을 채워주며 하나의 연대를 이루어내는 과정은 ‘원더풀스’의 서사를 단순한 코미디 그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핵심 동력이다. 평단이 지적한 ‘허술한 서사’ 역시, 인물들 간의 끈끈한 정과 한국적인 ‘정(情)’의 정서로 메워지며 대중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평론가의 메스를 넘어선 대중적 카타르시스
문화 칼럼니스트들의 정교한 텍스트 분석과 비평가들의 냉정한 별점 테러 속에서도 ‘원더풀스’의 거침없는 질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드라마는 결국 오늘날의 대중이 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과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척도다. 비평가들의 지적처럼 ‘원더풀스’가 영화사적 혁신이나 장르의 구조적 완결성을 이룩한 작품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을 구하는 것이 완벽한 엘리트 영웅이 아니라 조금 부족하고 엉뚱한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라는 메시지, 그리고 뻔한 클리셰를 영리하게 비틀어 시청자들에게 날 것 그대로의 웃음을 선사하는 연출력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평론가들의 까칠한 평가에 귀를 닫아버린 채, 스크린 너머에서 터져 나오는 시청자들의 유쾌한 폭소야말로 ‘원더풀스’가 글로벌 시장에 던진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초능력이다.
uappl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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