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의 끝이 시점의 시작과 맞물리는 ‘닫힌 루프’의 비극
12몽키즈의 인트로 장면
인류가 자초한 종말의 풍경은 늘 황량하다. 그러나 테리 길리엄 감독의 1995년 작 ‘12 몽키즈(Twelve Monkeys)’가 그려낸 아포칼립스는 단순한 황무지를 넘어선다. 그것은 기억과 환상, 과거와 미래가 뒤엉킨 거대한 정신적 미로다. 개봉 후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영화가 여전히 SF 영화사의 고전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의 서사는 명료한 듯하면서도 지독하게 뒤틀려 있다. 2035년, 바이러스로 인류의 99%가 절멸한 지하 세계. 죄수 제임스 콜(브루스 윌리스 분)은 지상으로 나가 샘플을 채취하는 ‘자원봉사’를 강요받는다. 그의 임무는 1996년으로 돌아가 바이러스의 근원인 ‘12 몽키즈’ 부대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다. 하지만 기계의 오류는 그를 1990년의 정신병원으로 던져놓는다.
여기서 영화는 관객에게 잔인한 질문을 던진다. 미래에서 온 사절인가, 아니면 시공간을 착각하는 정신질환자인가. 길리엄은 제임스 콜의 시선을 통해 확신과 불신 사이의 팽팽한 줄타기를 시도한다.
‘12 몽키즈’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뿌리는 크리스 마커의 1962년 작 단편 영화 ‘라 제테(La Jetée)’다. 단 한 장면을 제외하고 정지된 사진들로만 구성된 이 실험적 걸작은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철학적 사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길리엄은 ‘라 제테’가 가진 원형적 공포, 즉 ‘자신의 죽음을 목격하는 아이’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12 몽키즈’의 핵심 동력으로 삼았다. 마커의 영화가 정적인 미학으로 운명의 불가항력을 노래했다면, 길리엄은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비주얼과 광기 어린 에너지를 불어넣어 이를 현대적 서사시로 확장했다. 두 작품 모두 시점의 끝이 시점의 시작과 맞물리는 ‘닫힌 루프’의 비극을 공유한다.
비평가들은 테리 길리엄이 구축한 이 기괴한 세계관에 찬사를 보냈다. 로저 에버트(Roger Ebert)는 이 영화에 별 넷 만점에 셋 반을 주며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 영화는 시간 여행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시간 여행의 압도적인 혼란에 대처하려는 인간의 노력에 관한 것이다.” 그는 영화가 보여주는 시각적 장치들이 관객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든다는 점에 주목했다.
뉴욕 타임스의 자넷 마슬린(Janet Maslin)은 “길리엄은 비참하고 추한 미래의 풍경을 놀라울 정도로 매혹적으로 그려냈다”며 그의 시각적 연출력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제프리 고인스 캐릭터에 대해 “기존의 미남 배우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한, 소름 돋는 광기의 정점”이라는 극찬을 남겼다.
실제로 많은 비평가는 이 영화가 단순한 SF 액션이 아닌, 현대 사회의 시스템과 정신의학에 대한 냉소적 풍자를 담고 있다는 점을 짚어냈다. 과학자들이 지배하는 미래의 지하 세계나, 환자를 억압하는 1990년대의 정신병원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감옥’으로 묘사된다.
관객들의 반응은 더욱 뜨겁고도 분석적이다. IMDb의 수많은 리뷰어는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볼수록 진가가 드러나는 퍼즐’로 정의한다.
한 시청자(ID: Movie_Buff_99)는 “처음 봤을 때는 브래드 피트의 연기에 압도당했고, 두 번째 봤을 때는 브루스 윌리스의 슬픈 눈망울이 보였으며, 세 번째 봤을 때는 영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원이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고 적었다. 관객들은 주인공이 운명을 바꾸려 노력할수록 오히려 그 운명을 완성해가는 아이러니에 깊은 감정적 동요를 느꼈다.
또 다른 리뷰어는 영화 속 ‘카산드라 콤플렉스’를 언급했다. 미래를 알고 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제임스 콜과 캐서린 레일리 박사의 처지가 현대인의 고립감과 맞닿아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 영화를 다시 본 시청자들은 “1995년의 상상이 현실이 된 것 같다”며 영화가 가진 예지력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만일 코로나 바이러스가 자연 변이가 아니라, 누군가 의해 살포된 것이라면 ….
‘12 몽키즈’는 결국 실패에 관한 기록이다. 인류를 구하려던 영웅적 시도는 비극적인 마침표를 찍고, 시간의 톱니바퀴는 무심하게 돌아간다. 하지만 그 비극적 순환 속에서도 길리엄은 인간적인 교감을 놓치지 않는다. 레일리 박사가 제임스의 진실을 깨닫고 그를 돕기로 결심하는 순간, 그리고 제임스가 공항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 영화는 단순한 SF를 넘어선 매력을 획득한다. 죽어가는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는 소년의 눈빛 위로 아코디언 선율 ‘수이트 푼타 델 에스테(Suite Punta del Este)’가 슬프게 흐르는 엔딩 크레딧은 아직도 선명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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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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