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지수 98%, 데이터가 놓친 2%의 인간성 : 영화 <노 머시: 90분>

uapple 기자

등록 2026-02-20 12:17


기술이 진보할수록 인간의 성역은 좁아진다. 그 영역의 끝단에 자리한 것이 바로 ‘심판’이다. 타인의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사법 체계는 인간 사회가 유지해온 가장 고귀하면서도 불완전한 권위였다.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의 신작 'Mercy'(2026)는 인간의 감정과 오류를 배제한 AI 사법 시스템 ‘머시(MERCY)’가 지배하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기술 만능주의가 초래한 비극적 아이러니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디지털 흔적이 구성하는 유죄의 초상


영화는 아내 살해 혐의를 받는 형사 레이븐(크리스 프랫)이 사형 집행 의자에 묶인 채 90분의 카운트다운을 마주하며 시작된다. 감독은 전작 <서치>에서 보여준 ‘스크린라이프’ 기법을 한 단계 진화시켜, 주인공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디지털 세계를 유영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데이터의 배신이다. 레이븐이 찾아내는 CCTV와 SNS 기록들은 AI 판사 매덕스의 알고리즘을 거치며 오히려 ‘유죄 지수’를 높이는 증거로 둔갑한다. 이는 현대인이 남기는 무수한 디지털 발자취가 맥락을 거세당한 채 데이터화될 때, 개인의 진실이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모두에게 공정한 듯 아닌 듯"한 알고리즘의 잣대는 관객에게 깊은 의구심을 던진다.


AI 판사 도입, 대중의 갈망과 두려움의 교차점


흥미로운 대목은 영화 속 설정이 관객들에게 단순한 픽션 이상의 현실감으로 다가간다는 점이다. 실제 관람평 중에는 "아무리 AI 판사에 단점이 있어도 우리나라 판사들보다는 낫다"거나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는 현대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의 주관적 판단보다는 차라리 차가운 기계의 논리가 더 평등할 것이라는 대중의 기대를 반영한다.


영화는 이러한 대중적 갈망을 자극하면서도, 동시에 그 기계적 평등이 불러올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단면을 놓치지 않는다. "머지않아 다가올지도 모를 미래"라는 한 관람객의 평처럼, 영화는 머지않은 현실의 거울로서 기능하며 AI 시대 직전에 놓인 우리에게 묵직한 생각거리를 던진다.


장르적 쾌감과 철학적 사유의 균형


비주얼 연출 면에서 이 영화는 압도적이다. 화면 전환이 빠르고 전개가 늘어지지 않아 "100분 내내 고개를 의자에 기댈 수 없었다"는 평이 나올 만큼 속도감이 훌륭하다. 미래 배경의 디스토피아와 수사물, 그리고 가족애라는 보편적 코드를 영리하게 결합해 "킬링타임용으로 시작했다가 여운이 남는 영화"라는 평가를 이끌어낸다.


특히 크리스 프랫의 처절한 연기는 AI의 무미건조함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감정이 거세된 기계 판사 앞에서 뜨거운 눈물과 분노를 쏟아내는 그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인간미'가 무엇인지 재정의하게 만든다. 반전이 거듭되는 기승전결은 장르 영화로서의 미덕을 충분히 갖추었으며, 선택 하나에 상황이 뒤집히는 구조는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사투에 동참하게 한다.


시스템의 완벽함보다 중요한 인간의 의지


이 영화는 AI를 소재로 한 단순한 공상과학 영화에 머물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 사건의 실체가 기술적 결함이 아닌 그 기술을 교묘하게 악용해 증거를 조작한 '인간의 삐뚤어진 정의감'이었음이 밝혀지는 지점은 이 영화의 백미다.


결국 영화가 남기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기술 그 자체의 완벽함을 논하기 전에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의 윤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AI 시대에도 결국 중요한 것은 시스템의 정교함이 아니라, 차가운 데이터 더미 속에서 인간의 진실을 길어 올리려는 집념이다.


"가볍게 봤다가 은근 현실이랑 겹쳐 보여 여운이 남는다"는 평처럼,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기계의 판결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아니면 여전히 인간에 의한, 인간을 향한 자비를 믿고 있는가. 'Mercy'(2026)는  그 답을 내리는 대신, 90분의 긴박한 추격전을 통해 우리 스스로 그 질문의 무게를 견디게 만든다.


*이미지=AI  영화 포스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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