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에서 증발하는 잔혹한 운명 속, 존재의 의미 묻는 휴먼 판타지
- "기억되지 않아도 사랑은 남는다"… 상실을 딛고 일어선 한 남자의 기록

매년 생일이 돌아오면 타인의 기억은 물론, 세상의 모든 기록에서 존재가 삭제되는 소년이 있다면 그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호주 언론인 출신 작가 마이클 톰프슨의 화제작 '내가 없는 나의 세계(원제: How to Be Remembered)'가 문학수첩에서 번역 출간됐다.
◇ '1월 5일'의 형벌… 어제가 없는 세계에 던져지다
소설은 1월 5일, 주인공 토미 루엘린의 생일에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으로 포문을 연다. 평범한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토미는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함과 동시에 부모의 기억 속에서 완벽히 지워진다. 거실에 누워있는 아들을 보고 '낯선 아이'라며 경악하는 부모의 모습은 토미가 평생 짊어져야 할 가혹한 운명을 예고한다.
토미의 삶은 매년 '재설정(Reset)'된다. 위탁 시설인 밀크우드 하우스에서 자라며 해마다 새로운 관계를 맺지만, 생일만 지나면 그는 다시 이방인이 된다. 작가는 '기억되지 않는 삶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로맨스와 판타지라는 외피를 빌려 세밀하게 추적한다.
◇ 상실의 반복을 이겨내는 '성장의 감각'
이 작품의 백미는 반복되는 절망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인간의 의지다. 토미는 매번 모든 것을 잃으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상실을 통해 더 나은 선택을 학습한다. 기억은 삭제되어도 실패의 경험과 마음의 결은 몸에 남는다는 설정은 독자에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시설에서 만난 운명의 여인 캐리 프라이스와의 관계는 서사의 핵심 동력이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연인을 매년 다시 사랑하게 만들어야 하는 토미의 분투는, 관계의 덧없음과 동시에 그것을 다시 세워 올리는 사랑의 위대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 "벤자민 버튼과 포레스트 검프를 잇는 따뜻한 울림"
영국 가디언지 등 외신은 이 소설을 두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나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라고 평했다. 15년간 언론계에 몸담았던 저자 마이클 톰프슨은 특유의 속도감 있는 문체와 영화적인 전개로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했다.
번역은 '레슨 인 케미스트리', '북 오브 도어즈' 등을 옮긴 전문 번역가 심연희가 맡아 원작의 따뜻한 감성을 섬세하게 살려냈다.
관계가 사라진 뒤에도 남겨지는 것들에 주목하는 이 소설은, 타인에게 기억되는 삶보다 스스로를 잊지 않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매번 처음으로 돌아가는 가혹한 운명 속에서 토미가 과연 자신만의 '내일'을 쟁취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uappl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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