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비틀스부터 90년대 명반까지, 국산 LP 아카이브의 집대성 - 사전검열이 낳은 기형적 ‘변종 음반’과 ‘빽판’의 비화 전격 공개
그래서음악(so music) 출판사에서 대한민국 아날로그 음반의 황금기와 그 이면에 숨겨진 격동의 역사를 한눈에 조망하는 기념비적인 아카이브 북이 출간되었다. 신간 《마력의 한국 바이닐(MADE IN KOREA VINYL)》은 단순한 음반 목록을 넘어, 한국 대중음악사의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독특한 LP 문화를 정밀하게 추적한다.
‘그녀 손목 잡고 싶어’… 한국적 왜곡이 만든 독특한 가치
이 책은 1964년 발매된 한국 최초의 비틀스 음반 《Top Tune Show Vol. 7》의 비화로 포문을 연다. 당시 ‘I Want to Hold Your Hand’가 ‘그녀 손목 잡고 싶어’라는 노골적인(?) 제목으로 번역되어 유통됐던 시대적 배경부터,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라이선스반 변형 사례들을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수록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사전검열'이 낳은 시대적 산물들이다. 가사가 잘려 나가고 표지가 바뀌는 수난 속에서도 음악을 향유하려 했던 열망이 어떻게 ‘변종 음반’과 ‘빽판(복사반)’이라는 기이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는지 세밀하게 분석한다. 퀸(Queen)의 베스트 앨범이 한국에서 겪은 수난기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음반 제작 담당자의 위험한 모험 등 흥미진진한 뒷이야기가 가득하다.
가요부터 클래식까지, ‘Made In Korea’의 모든 것
책은 총 13부에 걸쳐 방대한 영역을 다룬다.
제1~3부: 비틀스와 초기 라이선스 LP의 탄생기
제5~7부: 검열이 낳은 변종 음반과 개성 넘치는 '빽판'의 세계
제8부 & 11부: 신중현, 산울림, 유재하 등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이 된 가요 명반들
제9~13부: 부틀렉 복제반과 밴드 음악, 그리고 라이선스 음질에 대한 오해와 진실
단순히 오래된 물건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1980~1990년대 발매된 ‘등잔 밑의 명반’들을 재조명하며 음악적 가치를 복원하는 데 주력했다.
친절한 해설과 방대한 사진 자료의 ‘결정판’
저자는 1971년 첫 라이선스반의 등장 이후 1990년대 라이선스 시대의 종언에 이르기까지, 한국 LP가 거쳐온 구불구불한 길을 ‘국산 LP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엮어냈다. 전문적인 용어 설명부터 초반(初盤)에만 존재하는 비밀스러운 차이점까지 수록되어 있어, 초보 수집가부터 베테랑 컬렉터까지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구성을 갖췄다.
《마력의 한국 바이닐》은 음악이 금지되고 가위질당하던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곁에 머물렀던 아날로그의 향취를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가이드북이다.
금지곡의 빈자리, 건전가요가 채우다
1970~80년대 한국 라이선스반의 가장 큰 특징은 단연 '사전검열'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 《The Dark Side Of The Moon》 발매 당시, 담당자는 금지곡 처분을 피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행해야 했다. 가사가 저속하거나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특정 곡이 삭제되면, 음반사들은 앨범의 길이를 맞추기 위해 전혀 상관없는 '건전가요'를 끼워 넣거나 다른 가수의 곡을 무단으로 수록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포토샵 없던 시절의 수작업", 기상천외한 커버 디자인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던 시절 유통된 '빽판(복사반)'의 세계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비틀스의 《Reel Music》 커버를 재현하기 위해 당시 제작자들은 포토샵 대신 가위와 풀을 이용한 정교한 수작업으로 이미지를 합성했다.
더욱 황당한 사례도 존재한다. 하드록 밴드 UFO의 음반 커버에 전혀 다른 아티스트의 사진을 쓰거나, 딥 퍼플(Deep Purple)의 알맹이(음반)에 핑크 플로이드의 껍데기(재킷)를 입히는 등 '정체불명의 하이브리드' 음반들이 버젓이 유통됐다. 이는 당시 정보가 부족했던 음악 팬들에게는 혼란을, 지금의 수집가들에게는 '희귀한 괴작'이라는 소장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퀸(Queen)의 수난시대와 '용'이 된 닐 영
세계적인 밴드 퀸 역시 한국의 검열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The Best Of Queen》 앨범은 한국에서 발매될 당시 주요 곡들이 대거 삭제되는 '수난'을 겪었다. 반면, 포크 록의 거장 닐 영(Neil Young)은 한국에서 이름의 한자음인 '용(龍)'으로 통하며 뜻밖의 친숙한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가요 명반의 비밀, '초반'을 찾아라
가요 섹션에서는 전설적인 밴드 송골매 1집의 비밀이 흥미롭다. 오직 초반(初盤)에만 존재하는 특이점은 컬렉터들 사이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또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가 어떻게 대중음악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는지, 신중현이 일궈낸 한국형 록 사운드의 원형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설은 독자들에게 한국 음악사의 자부심을 고취시킨다.
이처럼 《마력의 한국 바이닐》은 단순히 LP를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 음악을 듣는 것조차 투쟁이었던 시대의 기록을 생생하게 복원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uappl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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