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맥주 지점장 출신 가사하라 이치로, 8년간의 ‘커스토디얼’ 현장 보고서 펴내 화려한 퍼레이드 뒤편의 토사물 처리·제설 작업 등 노동의 가치 조명
환상과 마법이 가득한 ‘꿈의 나라’ 디즈니랜드. 하지만 그 무대 뒤편에는 매일 3만 보를 걸으며 아이스크림 자국을 닦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쓰레기를 줍는 이들이 존재한다. 신간 『백설공주도 출근합니다』(가사하라 이치로 저, 크루 출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디즈니랜드의 민낯과 그곳을 지탱하는 노동자들의 생생한 일상을 담은 현장 보고서다.
저자인 가사하라 이치로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히토쓰바시대학을 졸업하고 기린맥주에서 지점장까지 지낸 그는 57세에 조기 퇴직한 후, 도쿄 디즈니랜드의 청소 담당인 ‘커스토디얼 캐스트’로 입사했다. 이후 정년퇴직까지 8년간 현장을 누빈 그는 화려한 ‘온스테이지’의 이면에 숨겨진 고단한 ‘백스테이지’의 진실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
‘꿈의 조각’ 줍는 이들의 고군분투… 단순 청소 넘어선 ‘경험의 설계’
책은 디즈니랜드 캐스트들이 겪는 육체적 노동의 강도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갑작스러운 폭설에 개장 전 파크 전체의 눈을 치워야 했던 일, 누군가 남기고 간 토사물을 묵묵히 처리해야 하는 순간 등은 ‘마법’이라는 단어 아래 가려져 있던 현실적인 고충이다.
저자는 디즈니랜드의 캐스트가 단순히 쓸고 닦는 ‘청소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스스로를 ‘움직이는 안내소’라 명명하며, 게스트의 질문에 유연하게 대답하고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과 인내가 디즈니랜드를 지탱하는 주춧돌임을 역설한다. 보이는 장면만으로는 알 수 없는 캐스트들의 섬세한 판단이 결국 게스트의 즐거운 ‘경험’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청소부 아저씨"라는 차별적 시선… 편견을 지우는 노동의 힘
현장의 삶이 늘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일터에서 "청소부 아저씨"라는 호칭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일이나, 청소 노동을 하찮게 여기는 일부 게스트들의 차별적 시선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오히려 타인의 일에 더 깊이 공감하고 시선을 머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한다.
책은 낮은 시급과 고용 불안정, 감정 노동의 한계 같은 현실적인 고민도 놓치지 않는다. 억지 미소를 지어야 했던 순간이나 무리한 지침에 대한 답답함을 털어놓으면서도, 동료의 격려와 게스트의 감사 한마디에 다시 일어섰던 온기를 함께 전한다.
제2의 인생이 건네는 조용한 용기
이 책은 단순한 테마파크 비하인드 스토리를 넘어,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보편적인 성장을 다룬다. 대기업 지점장에서 파크의 청소부로 변신한 저자의 개인적 서사는 나이와 경력을 넘어 새로운 삶의 장을 여는 이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디즈니랜드라는 거대한 무대가 완벽하게 돌아가는 이유는 미키마우스의 손인사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벤치를 닦고 길 잃은 아이를 돌보는 수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이 기록은 독자들에게 노동의 가치와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어떻게 편견을 지우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uappl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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