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요 작가의 장편소설 『개의 설계사』(출판사 아작)
이 소설은 슈퍼스타 소녀와 그녀의 로봇 개, 그리고 그 로봇 개의 인공지능을 설계한 설계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겉보기에는 화려한 신세기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배경으로 하지만, 내면은 인간의 뒤틀린 욕망과 감정적 학대, 그리고 의문의 죽음이 얽힌 심리 미스터리 형식을 취한다.
슈퍼스타의 전 애인이 자살한 사건을 두고, 그 죽음에 얽힌 로봇 개와 설계사의 비밀이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을 통해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난다. 작가는 감정형 인공지능이라는 소재를 통해 기술의 끝에서 인간이 갈구하는 것과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로봇 개의 눈에 비친 인간의 우울… ‘개의 설계사’가 파고든 심연
이 책은 단순한 기술적 상상력을 넘어, 인간 내면에 도사린 파괴적인 감정과 복잡한 관계의 역학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소설의 중심에는 슈퍼스타 소녀의 취향과 정서에 완벽하게 동기화된 ‘로봇 개’가 존재한다. 이 인공지능을 설계한 인물인 ‘설계사’는 단순히 기계를 만드는 기술자를 넘어, 타인의 감정을 분석하고 재조립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주목할 점은 슈퍼스타의 전 애인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 로봇 개가 어떤 역할을 수행했느냐 하는 점이다. 작가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는 도구를 넘어, 인간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파고들거나 때로는 범죄적 진실을 은폐하는 장치로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독자에게 서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설계사의 개인적 서사 또한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중요한 축이다. 설계사의 동생은 외형적으로 쥐를 닮았다는 묘사와 함께, 언니인 설계사를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들의 관계는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과 대비되며, 가장 가까운 혈연 관계 안에서도 작동하는 권력 구조와 폭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타인의 로봇 개는 완벽하게 설계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가족 관계에서는 무력감을 느끼는 설계사의 심리적 모순은 이 소설이 지닌 미스터리의 깊이를 더한다.
기계는 인간의 우울을 학습하는가"… 『개의 설계사』 속 AI 담론
『개의 설계사』는 단순히 로봇 개를 소재로 한 SF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소설 본편과 240매에 달하는 부록 ‘도보시오’를 통해 인공지능(AI)과 인간 정신의 경계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특히 대규모 언어 모델(LLM)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독자들에게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소설 속 로봇 개는 슈퍼스타 소녀의 정서에 최적화된 결과물이다. 설계사는 소녀의 취향, 습관, 심지어는 보이고 싶지 않은 내면의 우울까지 데이터화하여 로봇 개에게 이식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비극은 '완벽한 이해'가 반드시 '치유'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는 로봇 개가 소녀의 우울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을 때,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정신을 갉아먹고 주변 인물들을 파멸로 이끄는지 묘사한다. 이는 부록의 첫 번째 꼭지인 ‘인공지능의 의식과 사회에 대하여’와 맥을 같이하며, 기계가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낼 때 발생하는 윤리적 공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부록의 두 번째 장인 ‘대규모 언어 모델의 실수에 대하여’는 작품 속 미스터리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현대 AI의 고질적인 문제인 '할루시네이션(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하는 현상)'은 소설 내에서 사건의 진상을 흐리는 장치로 작동한다.
슈퍼스타 전 애인의 죽음을 둘러싼 진술들 속에서, 설계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발생한 AI의 오류는 인간의 기억과 뒤섞이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존재하지 않았던 정신'이 어떻게 실재하는 인간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지 증명해 보인다.
이 작품은 "진부함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고유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작가는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느냐는 해묵은 질문 대신, '인간은 왜 자신의 망가진 부분을 기계에 투사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설계사가 설계한 것은 로봇 개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어쩌면 타인의 고통을 소유하고 통제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비틀린 욕망일지도 모른다. 부록 '도보시오'와 함께 읽을 때 이 소설은 비로소 완성되며, 독자들은 기술 문명 속에서 길을 잃은 인간 정신의 현주소를 마주하게 된다.
uappl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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